[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지만 비트코인은 오히려 8만달러를 돌파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디지털자산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에도 시장은 강한 반등 탄력을 보였다. 다만 관련 기업 주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유동성 수혜를 입은 거래소와 디지털 자산 보유 기업은 급등한 반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외연을 확장하던 채굴업체들은 하루 만에 20% 넘게 폭락했다.
숏스퀴즈 타고 8만1000달러 터치… ‘불확실성 해소’에 베팅한 자금
4일(현지시각)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장중 8만1000달러를 넘어섰다. 개표 초반 민주당의 의회 탈환이 유력해지자 7만5600달러 선까지 주저앉았으나, 불과 반나절 만에 7% 이상 치솟으며 낙폭을 단숨에 만회했다. 이더리움은 2400달러 선을 회복했고, 리플(XRP)과 솔라나 등 주요 알트코인도 일제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시장에서는 선거 결과 확정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와 국채금리·달러 인덱스 하락이 위험자산 전반의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고 본다. 여기에 숏 포지션의 강제 청산이 상승폭을 키웠다.
코인글래스 집계에 따르면 이날 하루 가상자산 파생상품 시장에서 강제 청산된 포지션 규모는 약 9억5000만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하락에 베팅했다가 증거금 부족으로 강제 정리된 숏 포지션이 5억6000만달러를 차지했다. 숏스퀴즈(공매도 투자자의 환매수로 인한 주가 급등)가 발생하며 가격 상승에 가속도가 붙은 셈이다.
코인베이스 2.7% 상승…AI 진출한 채굴주는 20% 급락
주식시장에서는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명암이 갈렸다. 비트코인 거래 수수료가 핵심 수익원인 미국 최대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장중 2.7% 오른 149.40달러를 기록했다. 비트코인을 대량 매집한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5.4% 뛰었고, 리테일 거래가 몰린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도 강세를 나타냈다.
반면 AI 데이터센터 임대업으로 주가 재평가를 받던 채굴업체들은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헛8(Hut 8)과 사이퍼마이닝은 장중 20% 이상 폭락했고 클린스파크, 코어사이언티픽, 갤럭시디지털도 일제히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같은 디지털자산 업종이지만 시장의 평가가 달랐던 이유는 AI 사업에 있다. 최근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은 기존에 확보한 전력과 부지를 활용해 AI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채굴보다 AI 기업에 컴퓨팅 시설을 임대하는 사업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에 주가도 상승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전력 과소비와 탄소 배출 규제가 대폭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번진 것이다.대규모 부채를 조달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증설해 온 채굴업체들로선 인허가 지연 시 막대한 금융비용을 떠안게 된다.
월가도 투자 전망을 낮췄다. 번스타인은 일부 비트코인 채굴업체의 목표주가를 최대 54% 낮췄다. 다만 이미 전력망 연결 승인을 확보한 업체들은 신규 데이터센터 공급이 제한될 경우 오히려 희소한 자산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억달러 쏟아부은 코인업계…민주당 의회가 규제 주도권
정치적 부담도 커졌다. 디지털자산 업계는 이번 중간선거에 약 2억달러의 정치자금을 투입했지만 주요 경합지역에서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업계가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지역 중 하나는 오하이오주다. 디지털자산 정치활동위원회들은 규제 강화에 적극적인 민주당 셰러드 브라운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6000만달러 넘게 지출했지만 브라운 후보가 승리했다.
코인베이스와 리플, 벤처투자회사 앤드리슨 호로위츠 등이 자금을 지원한 정치단체 페어셰이크는 브라운 후보의 낙선 운동에만 약 56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단체는 다른 지역에서 친디지털자산 성향의 민주당 후보들도 지원했지만 주요 경합지역에서는 공화당 후보 지원에 무게를 실었다.
민주당이 상·하원 의회 주도권을 쥐면서 가상자산의 규제 명문화 작업도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법안은 디지털자산의 증권·상품 분류와 거래소 감독 권한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 9월 상원에서 민주당의 반대로 법안 처리가 막힌 데 이어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민주당이 금융서비스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게 돼 법안의 통과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트코인은 안전지대, 알트코인은 규제 덫”… 자산별 옥석 가리기 본격화
자산별 명암이 엇갈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비트코인은 이미 현물 ETF를 통해 기관 자금의 유입 통로를 확보한 만큼 의회 지형 변화에 따른 입법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번스타인은 “시장구조 법안 처리가 지연되더라도 비트코인은 금리 환경과 ETF 자금 유입 흐름에 따라 독자적인 상승 동력을 이어갈 수 있다”면서도 “입법 공백 장기화는 알트코인 진영에 훨씬 가혹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단독 현물 ETF 승인과 ‘증권성 시비’ 탈피를 노리던 리플의 XRP, 솔라나 등 알트코인들은 민주당의 의회 장악으로 제도권 진입 문턱이 한층 높아질 처지에 놓였다. 재럿 자이버그 TD코웬 매크로 애널리스트는 “민주당이 상임위 지휘봉을 쥔 상황에서는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판단 기준을 완화해 주는 입법 합의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알트코인 프로젝트들이 직면한 규제 불확실성은 당분간 해소되기 힘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디파이 역시 투자자 보호와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부과로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 비용이 급증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반면 JP모건 등 월가 금융권은 “실물자산(RWA) 토큰화나 제도권 은행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은 포괄적 규제 법안이 없더라도 기존 금융 인프라와 결합해 실질적인 상업적 채택을 이어갈 수 있다”며 분야별 차별화 흐름을 전망했다.
한편 민주당이 청문회 소집권과 특별조사 권한을 확보하면서, 트럼프 대통령 일가가 주도해온 탈중앙화 가상자산 프로젝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WLF)’ 등 자체 토큰 발행 사업도 공직자 이해충돌과 불법 로비 의혹을 둘러싸고 의회 조사의 타깃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