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월가의 투자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성장해 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방산 관련주가 급락한 반면 빅테크와 신재생에너지·헬스케어 기업들은 급등했다. 공화당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지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기업들도 정치적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4일(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3.0%,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6%, 나스닥지수는 1.4% 상승했다. 민주당 승리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국제유가와 국채금리가 하락하면서 투자심리가 개선됐다.
그러나 개별 종목의 흐름은 극명하게 갈렸다. 시장은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어떤 기업의 성장에는 제동을 걸고 다른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될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AI 데이터센터 20% 폭락…아마존·MS는 6% 급등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업종은 AI 데이터센터다.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헛8은 23.2% 급락했고 냉각설비 업체 모딘은 21.4% 하락했다. 데이터센터 개발업체 사이퍼디지털은 20.0%,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는 9.9% 떨어졌다. 전력·냉각설비 업체 버티브와 GE버노바도 각각 12.9%, 9.3% 하락했다.
주가 급락의 배경에는 민주당이 추진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가 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텍사스주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텍사스는 미국 AI 데이터센터 산업의 최대 거점 가운데 하나다. 웰스파고에 따르면 미국에서 계획 중인 데이터센터 전력 용량의 약 27%가 텍사스에 집중돼 있다. 새로 선출된 지나 이노호사 텍사스 주지사는 AI 데이터센터 신규 건설의 일시 중단을 지지해 왔다.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냉각용수를 소비한다. 시설이 늘어나면서 주변 지역의 전기요금 상승과 물 부족에 대한 주민 반발도 커졌다. 민주당이 환경·전력 규제를 강화하면 신규 데이터센터의 인허가가 지연되고 건설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문제는 AI 인프라 기업 상당수가 대규모 차입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왔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 완공과 가동이 늦어지면 매출 발생 시점도 밀려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AI 산업의 성장성이 유지되더라도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아마존은 6.1%, 마이크로소프트는 6.7%, 알파벳은 3.2% 상승했다. 기존에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자원을 확보한 빅테크 기업들이 오히려 유리해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이 어려워지면 이미 확보한 시설과 전력 공급 능력의 가치가 높아진다. 데이터센터 공급 과잉을 막고 막대한 신규 투자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아트 호건 B.라일리웰스 수석 시장전략가는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이 둔화하면 기존 시설을 확보한 대형 기술기업의 자산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는 3.2% 하락했다. 데이터센터 증설이 늦어질 경우 반도체 주문 증가 속도도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태양광·헬스케어 급등…방산업체는 하락
AI 데이터센터와 달리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민주당 승리의 수혜주로 떠올랐다. 태양광 업체 퍼스트솔라는 4% 넘게 상승했고 엔페이즈에너지도 강세를 보였다.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화석연료 중심 에너지 정책을 견제하고 청정에너지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헬스케어도 수혜 업종으로 떠올랐다. 미국 대형 병원 운영업체 HCA헬스케어는 10% 넘게 급등했다. 민주당이 저소득층 의료보장과 건강보험 지원 축소에 제동을 걸 경우 병원 이용자와 보험 가입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저가 유통업체 달러트리도 생활비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 지원 확대 기대에 8% 이상 상승했다.
반면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노스럽그러먼은 하락했다.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예산 확대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불법 이민자 구금시설을 운영하는 지오그룹과 코어시빅 역시 이민 단속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약세를 보였다.
머스크, 공화당에 4억7400만달러 지원…테슬라도 정치적 부담
이번 선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공화당의 의회 장악을 지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투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승리를 막지 못했다.
뉴욕타임스가 선거자금 자료를 분석한 결과 머스크는 2025년 이후 이번 중간선거와 관련된 정치단체에 약 4억74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 가운데 2억1600만달러는 자신이 설립한 정치활동위원회 아메리카팩에, 1억6800만달러는 공화당 상원 후보를 지원하는 단체에 전달됐다. 공화당 하원 후보 지원 단체에도 약 3000만달러를 제공했다. 이는 테슬라 법인이 아닌 머스크 개인과 관련 단체의 정치자금이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4일 테슬라 주가는 3.3% 하락했고 우주기업 스페이스X도 약세를 나타냈다. 머스크와 정치적으로 밀접한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관련 기업에 대한 의회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테슬라의 자율주행 규제와 스페이스X의 정부 계약이 주목받고 있다. 민주당은 의회 청문회와 자료 제출 요구 등을 통해 정부 계약의 적정성과 이해충돌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연결된 기업들의 주가도 흔들렸다. 트럼프미디어는 이날 24.5% 급락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기대가 기업 가치에 반영돼 온 만큼 선거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다고 해서 당장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에게는 법안 거부권과 행정명령 권한이 남아 있으며 민주당 역시 주요 정책을 수정하려면 백악관과 협상해야 한다.
다만 내년 1월 새 의회가 출범하면 예산 심사와 상임위원회 청문회 주도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간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 온 1조5000억달러 규모의 국방예산과 AI 인프라 확대 정책, 의료보장 지출 조정 등이 의회 협상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