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강련호 변호사] 지난 9월4일 금융위원회는 유관기관, 협회 및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제3차 회의를 개최하고 그동안의 논의를 종합한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공개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제1차 회의에서 토큰증권 정책의 3대 방향으로 ① 다양성과 확장성을 위한 혁신, ② 맞춤형 투자자 보호, ③ 증권결제 시스템의 미래 준비를 제시한 바 있다. 이어 5월 제2차 회의에서는 토큰증권의 인프라·발행·유통과 관련한 핵심과제를 논의하였고, 이번 제3차 회의에서는 이를 구체적인 제도 및 인프라 구축계획으로 발전시켰다.
이번 정책방향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정부가 토큰증권을 단순히 ‘조각투자를 위한 새로운 증권’으로 접근하지 않고, 주식·채권·펀드 등 기존 금융상품까지 토큰화하는 디지털 자본시장 구축의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 역시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만 머물게 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향후 증권의 발행·유통뿐만 아니라 청산·결제·권리행사 및 기초자산 관리에 이르는 자본시장 전체의 가치사슬을 하나의 디지털 자본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연결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는 국내 토큰증권 정책이 초기의 ‘조각투자 활성화’ 단계에서 벗어나 자본시장 인프라 자체의 디지털 전환을 지향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토큰증권 제도화의 본격적인 출발
토큰증권은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하여 발행·유통되는 증권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토큰증권이 증권의 ‘내용’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증권의 ‘형태’에 따른 분류라는 점이다.
예컨대 주식, 채권, 수익증권, 투자계약증권 등은 자본시장법상 증권의 종류에 따른 구분이고, 실물증권·전자증권·토큰증권은 그 증권이 어떠한 방식으로 발행·관리되는지에 따른 구분이다. 따라서 조각투자증권이라고 하더라도 기존 전자증권 형태로 발행된다면 토큰증권이 아니며, 반대로 기존의 주식이나 채권도 분산원장을 이용하여 발행·관리된다면 토큰증권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토큰증권의 법적 기반은 지난 2월 개정된 전자증권법을 통해 마련되었다. 개정법은 토큰증권을 ‘분산원장등록주식등’이라는 형태로 제도화하고, 2027년 2월 4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번 정책방향은 바로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어떠한 증권부터 토큰화하고, 이를 위한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각투자’에서 ‘기존 금융상품의 토큰화’로
그동안 국내 토큰증권 논의는 사실상 조각투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부동산, 음악저작권 등 비교적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초자산을 대상으로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이나 투자계약증권을 발행하는 구조가 대표적이었다.
조각투자 중심의 접근은 초기 시장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기존의 주식이나 채권에 비해 조각투자증권은 권리관계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발행 규모가 크지 않으며, 기존 자본시장 시스템과의 복잡한 연계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 기존 금융상품의 토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사모 MMF를 토큰화한 BUIDL과 같은 사례가 등장하였고, 홍콩 등에서도 국채의 토큰화가 추진되고 있다. 결국 토큰증권의 장기적인 발전 방향은 새로운 유형의 조각투자 상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금융상품의 발행·유통·결제 구조 자체를 디지털화하는 데 있다.
이번 정책방향은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반영하였다. 내년 2월 제도 시행과 함께 시작되는 1단계에서는 펀드·채권·비상장 주식 등 기존 정형증권 중 토큰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펀드와 채권은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방식으로, 비상장 주식은 신탁방식을 활용한 비상장주식 토큰화가 우선 검토된다. 동시에 기존 조각투자증권의 토큰화도 허용된다.
이후 시장의 안정성과 수요를 확인하면서 2단계에서는 공모증권 등으로 토큰화의 범위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 등을 결제수단으로 활용하는 온체인 결제 인프라까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토큰증권 정책의 중심축이 ‘새로운 투자상품의 등장’에서 ‘자본시장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각투자 규제도 ‘활성화와 투자자 보호’의 균형으로
이번 정책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조각투자에 대한 규제 방향이다. 금융위원회는 비금전신탁 수익증권과 관련하여 기존의 엄격한 규제를 일부 완화하면서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
대표적인 변화가 기초자산의 집합화(pooling)를 조건부로 허용하는 것이다. 과거 조각투자 샌드박스에서는 기초자산의 집합화가 제한되었으나, 앞으로는 동일한 종류의 자산을 일정한 기준과 목적에 따라 집합화하고, 부실자산을 포함하지 않으며 개별 자산에 관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등의 요건을 충족하면 여러 기초자산을 하나의 조각투자상품으로 묶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조각투자 시장의 상품 다양성을 높이는 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 개별 자산의 규모가 작아 기존 방식으로는 증권화하기 어려웠던 자산을 묶어 금융상품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래매출채권과 같이 미래의 불확실한 사건과 연계된 자산 역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조각투자의 기초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 제시되었다. 다만 안정적인 기초 법률관계가 존재하고 가까운 장래에 발생이 예상되며, 신용보완 등 강화된 투자자 보호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도 공모물량 배정, 1인당 청약한도, 이해상충 방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원칙이 제시됐다.
결국 이번 정책은 조각투자를 무조건적으로 활성화하기보다는 상품의 혁신을 허용하되 투자자가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의 범위를 제도적으로 설정하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투자계약증권은 여전히 ‘신중한 접근’
현재까지 발행된 투자계약증권은 사업의 핵심자산에 투자자들이 공동소유권을 설정하는 이른바 ‘공유지분형’ 구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토큰 자체가 이전되더라도 민법상 공유지분의 이전 등 별도의 법률행위가 필요할 수 있어 토큰증권의 장점인 자유로운 유통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반대로 공동소유권을 설정하지 않고 사업 자체에 투자하는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은 발행인과 사업자산 사이의 도산절연 문제 등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위원회는 투자계약증권의 유통성 확보와 사업형 투자계약증권의 투자자 보호 기준에 대해서는 연구용역 등을 통해 추가 검토하기로 하였다.
이는 토큰증권 제도가 기술적 가능성만을 기준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각 증권의 법적 권리관계와 투자자 보호 수준을 함께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토큰증권 유통, 별도 시장이 아니라 기존 자본시장과 연결
토큰증권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유통시장이다. 아무리 다양한 증권을 토큰화하더라도 투자자가 이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없다면 토큰화의 경제적 효용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번 정책방향에서 금융위원회는 토큰증권만을 위한 별도의 금융투자업 인가체계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기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 인가를 보유한 경우 해당 인가의 업무범위 내에서 토큰증권도 취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정책적 선택이다. 자본시장법의 금융투자업 인가체계가 원칙적으로 증권의 형태에 따라 금융투자업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토큰증권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증권이 등장했다고 하여 별도의 인가체계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규제체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증권사와 장외거래소가 토큰증권의 주요 유통채널로 기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비상장주식과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에 이어 채무증권에 대해서도 장외거래소 인가단위가 추가로 신설될 예정이다.
장외거래소에서 일반투자자가 거래할 수 있는 규모도 중요한 쟁점이다. 금융위원회는 과도한 투자제한을 피하면서도 투자자 보호를 확보하기 위해 장외거래소별 연간 순매수 금액을 기준으로 1억원의 한도를 설정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토큰증권이 자본시장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유통뿐 아니라 불공정거래 방지체계 역시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장외거래소에 불공정거래 예방·감시·조치에 관한 업무기준을 마련하고 준수하도록 하는 한편, 부정거래에 대해서는 형벌·과징금·계좌동결·임원선임 제한 등 기존 자본시장법상 제재체계를 적용하는 방향이다.
발행인 계좌관리기관과 분산원장 표준화
토큰증권 생태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제도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는 고객의 증권계좌를 개설하고 관리하는 계좌관리기관의 역할을 주로 금융회사가 수행해 왔다.
그러나 토큰증권에 대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증권 발행인이 직접 계좌관리기관이 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었다. 금융위원회는 투자자 재산권 보호와 증권 발행·유통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발행인 계좌관리기관의 등록요건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이는 발행인이 실시간으로 투자자 명단을 확인하고 권리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발행인에게 증권계좌 관리라는 중요한 기능을 직접 맡기는 만큼 전산장애, 해킹, 내부통제 실패 등에 따른 위험도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하위법규 마련 과정에서 전산·보안 기준과 사고 발생 시 책임체계가 충분히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토큰증권 인프라가 기존 전자증권 시스템보다 반드시 높은 수준의 혁신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전자증권 시스템에 준하는 안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면서 분산원장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 초기 시장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궁극적인 목표는 ‘온체인 자본시장’
이번 정책방향을 종합하면 토큰증권의 최종적인 모습은 단순히 증권을 블록체인에 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발행 단계에서 증권이 분산원장에 등록되고, 유통시장에서 토큰 형태로 거래되며, 결제 단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 결제수단이 활용되고, 권리행사와 기초자산 관리까지 온체인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궁극적인 목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특히 토큰증권 원장과 스테이블코인 원장이 서로 다른 분산원장을 사용하는 경우 두 원장을 연결하기 위한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핵심적인 기술·제도적 과제가 된다. 브릿지 기관을 통한 연결 방식, 메인넷 간 직접 연계 방식 등 다양한 기술적 방안이 검토될 예정이지만,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거래의 최종성, 오류 발생 시 책임소재, 해킹 및 자산유실 위험, 결제취소 가능성 등 법률적·규제적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향후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와 함께 토큰증권 결제 인프라에 관한 논의도 보다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성공적인 토큰증권 시장을 위한 과제
이번 토큰증권 정책방향은 그동안 논의되어 온 토큰증권 제도를 한 단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2027년 2월 제도 시행과 동시에 조각투자뿐만 아니라 펀드·채권·비상장주식 등 기존 정형증권의 토큰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점은 국내 토큰증권 시장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첫째, 기존 자본시장 규제와 토큰증권 규제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 토큰증권은 새로운 금융상품이라기보다 기존 증권의 새로운 발행·관리 형태라는 점에서, 기존 증권에 적용되는 공시·불공정거래·투자자 보호 규제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산원장의 기술적 특성과 법률상 권리관계 사이의 간극을 해소해야 한다. 토큰의 이전과 법률상 권리의 이전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투자계약증권이나 비상장주식의 토큰화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셋째, 시장 참여자의 책임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토큰증권에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분산원장 운영자, 증권사, 장외거래소, 전자등록기관 등 다양한 참여자가 관여할 수 있다. 전산장애나 해킹, 잘못된 권리등록, 거래 오류 등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부담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면 시장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넷째, 기술혁신과 규제의 균형이 필요하다. 토큰증권 시장은 기술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분야인 만큼 법령과 하위규정이 기술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규정할 경우 오히려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 반대로 규제를 지나치게 완화하면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결국 토큰증권 정책의 핵심은 ‘블록체인을 금융에 도입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블록체인과 분산원장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여 자본시장의 발행·유통·결제 구조를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재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가 이번 정책방향에서 제시한 “혁신은 시장이 이끌고, 신뢰는 정부가 뒷받침한다”는 방향은 토큰증권 정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내년 2월 제도 시행은 토큰증권 시장의 완성점이 아니라 출발점에 가깝다. 초기에는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펀드·채권, 신탁방식의 비상장주식 및 조각투자증권 등 비교적 안정적인 영역에서 시작하겠지만, 향후 공모증권으로 확대되고 스테이블코인과 연계된 온체인 결제까지 구현된다면 자본시장의 작동방식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토큰증권을 기존 자본시장과 별개의 ‘새로운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본시장에 자연스럽게 편입시키는 것이다. 별도의 인가체계를 만들지 않고 기존 증권사와 장외거래소가 업무범위 내에서 토큰증권을 취급하도록 한 이번 정책방향은 이러한 측면에서 합리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
앞으로의 관건은 제도 시행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투자자 보호와 기술혁신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토큰증권이 성공한다면 이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상품 하나가 추가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증권의 발행부터 거래, 결제, 권리행사에 이르는 자본시장 전체가 디지털 방식으로 재편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토큰증권 정책방향’은 바로 그 변화의 첫 번째 구체적인 로드맵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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