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려는 정책 기대와 달러 약세가 비트코인 상승을 뒷받침한 가운데 일본발 변수가 새로운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국채 금리가 약 3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일본은행(BOJ)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엔화는 달러당 159엔 부근까지 다시 약해져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력이 크지 않다. 비트코인도 최근 7일간 20% 넘게 오르며 일본 채권시장의 불안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모두 지나친 엔화 약세를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BOJ의 추가 금리 인상이나 외환시장 개입으로 엔화가 급격히 강세로 전환할 경우 엔화를 빌려 미국 주식과 디지털자산 등에 투자했던 캐리 트레이드가 빠르게 청산될 수 있다.

달러 약세라는 ‘약’을 먹고 상승한 비트코인에 엔화 강세가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日 국채금리 30년 만에 최고…9월 BOJ 인상 가능성 부상

23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일본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2.945%까지 상승했다. 1996년 9월 이후 약 3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같은 날 30년 만기 국채 금리도 4.115%까지 치솟았다.

일본 국채 금리를 끌어올린 것은 물가 압력이다. 일본의 7월 근원 물가상승률은 1.8%로 6월 1.6%보다 높아졌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상승률도 1.9%를 기록했다.

시장은 이를 BOJ가 초저금리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물러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BOJ는 오는 9월 17~18일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한다. 시장에서는 현재 1%인 정책금리를 1.25%로 인상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일본의 금리 상승은 엔화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이가 줄어들면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거래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외환시장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외환시장 개입 이후 달러당 155.20엔까지 강해졌던 엔화는 다시 158엔을 넘어 159엔 부근으로 밀렸다. 당국 개입으로 나타났던 엔화 강세의 상당 부분을 반납한 셈이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본격화하지 않고 있다. 비트코인은 7만7000달러대에서 거래되며 최근 일주일 동안 약 22% 상승했다.

미국 역시 엔화의 과도한 약세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BOJ의 금리 인상과 미·일 당국의 정책 대응이 맞물리면 엔화 방향이 빠르게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달러 약세는 ‘약’이었는데…엔화 급등하면 캐리 트레이드 청산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확대하면서 시장에서는 장기금리 상승을 억제하려는 정책 의지가 강화되고 있다는 기대가 형성됐다. 미국 장기금리의 추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고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비트코인과 같은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비트코인이 최근 일주일간 20% 넘게 오른 것도 이 같은 유동성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엔화 강세는 달러 약세와는 다른 경로로 비트코인에 영향을 준다.

일본이 장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은 낮은 비용으로 엔화를 빌린 뒤 달러로 환전해 미국 주식과 채권 등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해왔다. 위험선호가 강할 때는 디지털자산도 이런 글로벌 유동성의 영향을 받는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해외 비은행권에 공급된 엔화 대출 규모는 약 2500억달러다. 범위를 넓힌 추정치는 약 5000억달러에 달한다.

엔화가 약하거나 안정적으로 움직이면 이 거래는 유지될 수 있다. 반대로 엔화 가치가 짧은 기간에 급등하면 투자자는 환차손을 입게 된다. 여기에 BOJ의 금리 인상으로 엔화 차입 비용까지 올라가면 캐리 트레이드의 수익 구조가 동시에 악화한다.

결국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이나 디지털자산 등 기존 자산을 팔고 엔화를 사들여 차입금을 상환하게 된다. 엔화 강세가 위험자산 매도를 부르고 위험자산 매도가 다시 포지션 축소를 자극하는 디레버리징이 발생할 수 있다.

비트코인 투자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달러가 약해지느냐’만이 아니라 달러·엔 환율이 얼마나 빠르게 하락하느냐인 셈이다.

2024년 8월엔 비트코인 4만9000달러까지 급락

시장이 엔화 움직임을 경계하는 이유는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8월 엔화가 빠르게 강세를 나타내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확산했다. 당시 비트코인은 8월 초 약 6만4600달러에서 출발한 뒤 5일 장중 4만9000달러까지 떨어졌다. 일본 토픽스(TOPIX) 지수도 같은 날 하루 만에 12% 급락했다.

당시 특징은 달러가 강해서 위험자산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경기 둔화 우려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서 달러 자체는 약세 압력을 받았다.

달러 약세라면 통상 비트코인과 미국 성장주에 우호적인 환경이지만 엔화 급등에 따른 캐리 트레이드 청산 충격이 이를 압도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줄이는 과정에서 비트코인과 주식이 함께 매도된 것이다.

달러가 완만하게 약해지고 엔화 역시 천천히 강해지는 경우라면 비트코인에 반드시 악재라고 볼 이유는 없다. 미국 금리 부담은 낮아지는 동시에 캐리 트레이드 역시 점진적으로 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BOJ의 금리 인상이나 추가 외환시장 개입으로 엔화가 짧은 기간 급등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달러 약세가 비트코인에 제공하는 유동성 효과보다 캐리 트레이드 청산에 따른 위험자산 매도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비트코인뿐 아니라 美 증시도 변수…관건은 ‘엔화 강세 속도’

달러 약세와 미국 장기금리 하락은 일반적으로 미국 증시에 우호적이다. 특히 금리 하락은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를 높여 기술주와 성장주의 밸류에이션 부담을 낮추는 요인이다. 달러 약세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미국 다국적 기업의 실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엔화가 급등하면서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면 미국 증시에서도 포지션 축소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레버리지와 위험선호에 민감한 성장주와 기술주가 단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일본 증시는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엔화 약세는 일본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과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의 엔화 환산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엔화가 빠르게 강해지면 자동차와 전자 기계 등 수출기업의 실적 기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장기금리 부담 완화와 달러 약세가 위험자산을 밀어 올리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국채 금리 상승과 BOJ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향후 엔화 강세와 글로벌 캐리 트레이드 축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발 유동성 기대가 우위를 보였다. 비트코인이 7만7000달러대로 올라선 가운데 미국 주식시장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배경이다.

다음 분수령은 9월 BOJ 통화정책회의가 될 전망이다. BOJ가 시장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1%에서 1.25%로 인상할 경우 달러·엔 환율이 얼마나 빠르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비트코인 투자자에게 가장 우호적인 시나리오는 단순한 ‘엔화 약세 지속’이 아니다. 미국 장기금리와 달러가 완만하게 내려가는 동시에 엔화 역시 급격한 캐리 트레이드 청산을 일으키지 않는 속도로 정상화되는 것이다.

반대로 엔화 약세를 원하지 않는 미·일 당국의 정책 대응이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나 엔화가 단기간 급등할 경우 최근 비트코인 랠리의 새로운 복병이 될 수 있다. 미국발 달러 약세가 비트코인 상승의 동력이 됐다면 이제 시장의 시선은 일본발 엔화 강세가 그 효과를 얼마나 상쇄할지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