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과세 충격 크지 않아”
취득가액·거래 파악 과제 여전
투자자·야권 유예 요구 확산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정부가 내년 1월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과세 준비 수준이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투자자의 85%가 500만원 미만을 보유하고 있어 실제 세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세 부담이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과세를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나온다. 취득가액 산정과 거래내역 파악 등 과세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전날 열린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디지털자산 과세와 관련해 “시간을 상당히 미뤄 놓은 상황”이라며 “지금 출발하는 게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근거로는 투자자의 보유 규모를 들었다. 이 후보자는 “전체의 85%가 보유한 자산 규모가 500만원이 안 된다”며 연간 250만원의 기본공제와 의제취득가액 등을 고려하면 이들 대부분이 면세점에 있거나 세 부담이 미미할 것으로 봤다.
다만 투자자의 보유액이 적다는 사실만으로 과세 준비가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디지털자산 과세는 보유 규모가 아니라 양도·대여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을 기준으로 이뤄진다. 보유액이 같더라도 매매 횟수와 취득가액, 거래 경로 등에 따라 실제 과세 대상 소득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 후보자가 언급한 ‘투자자의 85%가 500만원 미만을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만으로 실제 과세 대상과 세 부담을 가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디지털자산 과세는 특정 시점의 보유액이 아니라 양도·대여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보유액이 500만원 미만이더라도 매매 과정에서 발생한 연간 실현이익이 기본공제액을 넘으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현행 소득세법은 내년 1월1일부터 디지털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발생한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한다. 연간 손익을 합산해 250만원을 공제한 뒤 초과분에 20%의 세율을 적용한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실질 세율은 22%다. 결국 실제 세 부담을 따지려면 현재 보유액보다 연간 실현손익과 취득가액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정부가 제시한 의제취득가액은 과세 시행 이전에 발생한 가격 상승분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장치다. 기존 보유분은 실제 취득가액과 올해 12월31일 시가 가운데 높은 금액을 취득가액으로 인정한다. 다만 과세 시행 이후 새로 취득한 자산의 취득가액 산정이나 거래내역 파악까지 해결하는 장치는 아니다.
우선 실제 취득가액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적용할 세부 기준이 남아 있다. 현행 제도는 양도가액의 최대 50%를 필요경비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지만, 구체적인 적용 요건과 인정 비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거래 경로에 따른 소득 파악의 차이도 과제다. 국내 가상자산사업자를 통한 거래는 사업자가 제출하는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반면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 거래소 밖에서 이뤄진 거래는 동일한 방식으로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 과세당국이 거래 경로와 관계없이 투자자의 소득을 어느 수준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가 과세 형평성과 맞물린 쟁점으로 남아 있다.
특히 거래소가 폐업해 거래자료를 확보하기 어렵거나 투자자가 보유 자산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 손실을 어떻게 반영할지도 문제다.
홍푸른 디센트 대표 변호사는 “거래소 폐업으로 코인 자체를 돌려받지 못한 경우 그 손실을 어디에서도 공제받을 수 없다는 부분이 가장 문제”라며 “손익통산 등을 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예정대로 디지털자산 과세를 시행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지만, 과세 준비를 둘러싼 미비점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투자자와 야권을 중심으로 유예·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통해 과세 일정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코인과세 2년 유예에 관한 청원’은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요건을 충족했다. 앞서 지난 5월에도 과세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는 등 과세 시행을 앞두고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야권에서도 과세를 유예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국민의힘 송언석 의원은 지난 3월 디지털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데 이어, 이날 페이스북에서도 “디지털자산 소득세는 폐지해야 한다”며 주식과의 과세 형평성과 해외 자금 유출 가능성을 이유로 폐지 필요성을 거듭 주장했다.
같은 당 김상훈 의원 역시 과세 시행 시점을 내년 1월에서 2029년 1월로 2년 늦추는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과세 인프라 구축과 국제 정보교환체계 정비 상황 등을 고려해 시행 시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과세 유예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한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였던 2024년에도 과세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디지털자산 과세를 2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당시 국민의힘의 유예 방침에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하면서 과세 시행 시점은 2025년에서 2027년으로 미뤄졌다.
한 의원은 “지난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직도 과세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다시 할 수밖에 없다”며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른 투자자산과 달리 디지털자산 소득에 별도의 과세 기준을 적용하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한 의원은 “일하지 않고 버는 소득이 ‘불로소득’이라면 부동산 과세가 주식 과세와 다를 이유가 없고, 국장 소득이 미장 소득이나 코인 소득과 다를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