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인공지능(AI) 업계에서 첨단 모델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면서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에서는 비트코인(BTC)이 7만7000달러 아래로 밀린 가운데 미국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제 체계를 명확히 할 클래리티법(Clarity Act) 표결도 임박하면서 거시경제와 규제 불확실성이 동시에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14일 오전 8시11분 기준 국내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BTC)은 전날 오전 9시 대비 0.62% 하락한 1억443만원에 거래됐다.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에서는 0.77% 내린 7만6660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시각 이더리움(ETH)은 1.87% 하락한 2476.3달러, 엑스알피(XRP)는 1.78% 내린 1.34달러에 거래됐다.

코인글래스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비트코인에서 3217만달러(432억원) 규모의 포지션이 청산됐다. 이 가운데 81.42%는 롱(매수) 포지션이었다. 전체 디지털자산 시장에서는 약 2억6595만달러(3723억원) 규모의 청산이 발생했다.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압박한 요인으로는 AI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꼽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100 지수 선물은 아시아 시장 초반 1.2% 하락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12일 첨단 AI 모델의 개발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며 독립적인 제3자 평가를 포함한 추가 안전장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CEO도 아모데이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AI 업계 전반에서 개발 속도와 안전성을 둘러싼 논의가 확산했다.

시장에서는 AI 개발 속도 조절이 기업들의 투자 축소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고평가 논란이 이어진 AI 관련주에서 투자심리가 약화할 경우 기술주를 비롯한 위험자산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닉 트위데일 AT글로벌마켓 수석 시장분석가는 “대형 AI 기업들의 중대한 전략 변화가 기업가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 투자자들이 평가하면서 흥미로운 한 주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AI 기업에 부품 등을 공급하는 아시아 대형 기술주가 우선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AI 개발 속도 조절 논의가 기업 실적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케리 크레이그 JP모건자산운용 글로벌 시장전략가는 “개발 속도를 늦출 필요성이 자본적지출(CAPEX) 전망 하향이나 모델 출시 지연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기업가치나 실적보다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유가 100달러 돌파…연준 금리 결정도 변수

국제유가 급등도 위험자산 투자심리에 부담을 주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공격을 받은 뒤 주요 원유 수송로인 동서 송유관(East-West Pipeline)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확대됐다.

1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싱가포르 시간 오전 6시27분 기준 3.1% 오른 배럴당 107.85달러를 기록했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8% 상승한 배럴당 102.87달러에 거래됐다.

사우디 동서 송유관은 하루 약 700만배럴의 원유를 홍해 연안 항구로 운송할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사우디 원유 수출을 유지하기 위한 주요 우회로로 활용돼 왔다.

국제유가 상승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에 대한 경계도 높이고 있다. 미국의 8월 물가 상승세가 시장 예상보다 강하게 나타난 가운데 에너지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부각됐다.

미국 국채 금리도 상승했다. 2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1일 뉴욕 시장에서 4bp(1bp=0.01%포인트) 올랐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5%에 근접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16일 예정된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을 주시하고 있다. 연준에 이어 영국과 일본 중앙은행도 잇따라 정책금리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주요국의 통화정책 방향이 글로벌 위험자산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美 클래리티법 15일 첫 표결…60표 확보 여부 주목

거시경제 변수와 함께 미국의 디지털자산 규제 입법도 이번주 시장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미국 상원은 15일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제 체계를 정비하는 클래리티법에 대한 첫 토론종결(cloture)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표결은 15일 오후 2시15분(현지시각)으로 예정돼 있다. 토론종결 표결을 통과하려면 60표가 필요하지만 지난 11일 오후 기준 법안은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표결 직전까지 협상이 이어질 예정이어서 결과는 유동적인 상황이다. 막판 협상에서 진전이 나타날 경우 표결 일정 자체가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공개된 법안에는 민주당이 요구한 일부 수정 사항이 반영됐다. 탈중앙화금융(DeFi)과 신용조합 관련 조항 등이 조정됐지만 핵심 쟁점으로 꼽히는 윤리 규정을 둘러싼 이견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 일정도 법안 처리의 변수다. 이번 표결은 미국 중간선거를 약 7주 앞두고 진행된다. 상원의 입법 일정이 제한된 만큼 법안이 이번주 표결에서 좌초하거나 이달 안에 상원 문턱을 넘지 못하면 연내 입법 가능성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클래리티법은 미국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제 체계를 정비하고 규제기관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설정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동안 미국 디지털자산 업계에서는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관할 범위 등을 둘러싼 규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져 왔다.

법안 처리가 무산될 경우 SEC와 CFTC가 규칙 제정을 통해 일부 규제 공백을 메우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이해관계자들이 규제기관의 조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규칙 제정과 시행이 장기간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따라 디지털자산 시장은 이번주 거시경제와 정책 변수를 동시에 소화할 전망이다. AI 산업을 둘러싼 위험회피 심리와 국제유가 상승, 연준의 금리 결정에 더해 클래리티법의 상원 표결 결과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디지털자산의 투자심리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