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오수환 기자 / 강나연 에디터] 글로벌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시장에서 초기 가격 탐색을 마치고 유통 물량이 늘어나는 시점에 한국 원화마켓이 뒤이어 문을 여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글로벌 벤처캐피털과 프로젝트 재단의 물량이 시장에 풀리는 시점과 국내 상장이 맞물리면서 한국 개인 투자자가 글로벌 상장 사이클 후반부의 가격과 유통량 위험을 떠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언락 버튼 누르자 ‘0~8일’ 만에 한국 원화마켓 직행

블록미디어가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업비트와 빗썸 원화마켓에 신규 입성한 종목(79개)을 전수 조사한 결과, 토큰 생성 이벤트(TGE)나 대규모 언락이 발생한 지 불과 8일 이내에 국내 거래가 시작된 사례가 다수 발견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메가이더(MEGA)다. 메가이더는 4월 30일 토큰생성이벤트(TGE)와 동시에 전체 발행량의 11%가 유통됐고 같은 날 업비트와 빗썸에 상장됐다. 캡(CAP) 역시 6월 26일 TGE를 통해 전체 물량의 18.3%가 유통된 뒤 나흘 만에 빗썸에 들어왔다.

추가 물량이 풀린 직후 국내에 상장된 사례도 있다. 모포(MORPHO)는 7월 21일 2400만달러 규모의 토큰 언락이 이뤄진 뒤 나흘 만에 업비트에 상장됐다. TGE를 통한 초기 유통과 기존 토큰의 추가 언락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시장에 유통 가능한 물량이 늘어난 시점과 국내 상장이 근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솔스티스 역시 5월 25일 TGE 이후 일주일 만에 국내에 상장됐다. 특히 상장 한 달 뒤인 6월 29일 업비트에서만 1449억원의 거래대금을 기록했다. 당시 솔스티스 글로벌 거래량의 65.3%가 업비트와 빗썸에 집중됐다. 업비트가 52.6%, 빗썸이 12.7%를 각각 차지했다.

이들 사례는 글로벌 시장에서 토큰의 초기 유통이 시작되거나 추가 물량이 풀린 시점과 국내 원화마켓 상장이 짧은 간격을 두고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특히 솔스티스처럼 상장 이후 글로벌 거래량의 상당 부분이 국내에 집중된 사례도 나타나면서 원화마켓이 신규 토큰의 주요 유동성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확인된다.

“28일 늦게 27.4% 비싸게”… 한국은 ‘후행 상장’

이처럼 대규모 물량이 풀리는 시점에 국내 거래소가 원화 거래를 지원하는 현상은 국내 시장 특유의 ‘후행 상장’ 구조와 결합할 때 한층 더 큰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 디지털자산 리서치 기관 IOSG벤처스가 올해 1월부터 5월 중순까지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바이비트, OKX, 업비트, 빗썸 등 주요 거래소의 신규 상장 92개 토큰(총 207건)을 추적 분석한 결과, 신규 토큰을 수용하는 시점에서 국내외 거래소 간 극명한 온도 차가 확인됐다.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경우 신규 상장 종목 가운데 ‘글로벌 최초 상장’ 비율이 67%에 달했다. 바이비트(39%)와 바이낸스 무기한선물(48%) 역시 높은 비중으로 신규 토큰의 초기 가격 형성(Price Discovery)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해외 대형 거래소들이 신규 프로젝트 발굴과 초기 가격 발견의 전면에 서 있는 셈이다.

반면 국내 거래소는 글로벌 상장 사이클의 후반부에 치우쳐 있었다. 빗썸 신규 상장 종목의 85%는 이미 해외 다른 거래소에서 거래가 시작된 이후 들여온 ‘후행 상장’이었다. 업비트 역시 글로벌 상장 순서에서 평균 4.44번째로 뒤처졌으며, 글로벌 최초 상장 이후 업비트에 입성하기까지 평균 28일의 시차가 발생했다.

이 28일의 시차는 국내 상장 시점의 가격 차이로 이어졌다. 업비트에 신규 상장될 때의 시세는 해당 토큰의 글로벌 최초 상장가보다 평균 27.4%나 높은 수준이었다. 빗썸 역시 평균 19.4% 비싼 상태에서 거래가 시작됐다.

상장 이후의 성적표 또한 부진했다. 업비트 신규 상장 코인은 거래 개시 7일 뒤 평균 13.5% 하락했고, 30일 뒤에는 평균 하락률이 25.7%까지 확대됐다. 반면 글로벌 최초 상장을 이끈 바이비트 상장 종목의 14일 이내 최고 수익률 평균은 86%에 달했다. 국내 상장 당일 일시적 급등(상장빔)이 나타나더라도, 이미 상단이 막힌 가격에 진입한 탓에 국내 투자자의 기대 수익은 작고 하방 위험은 훨씬 컸다.

해외서 80% 뛴 뒤 빗썸으로… ROBO가 보여준 ‘상장 사슬’

패브릭 프로토콜(ROBO)은 이러한 후행 상장 구조가 실제 시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ROBO는 2월 27일 바이낸스 무기한선물과 코인베이스, 바이비트에서 최초 가격 0.022달러로 거래를 시작했다. 거래 첫날 80% 넘게 급등했고 다음 날 시가는 0.0405달러까지 올라 하루 만에 최초 가격의 두 배 가까운 수준에 도달했다.

이후 주요 글로벌 현물 거래소가 차례로 ROBO를 받아들였다. 3월 5일 바이낸스 현물시장에 정식 상장됐을 당시에는 장중 0.0493달러까지 올라 해당 거래 사이클의 최고점을 기록했다.

빗썸이 ROBO 원화마켓 거래를 시작한 것은 3월 18일이었다. 당시 가격은 0.0303달러 수준으로 최초 거래가(0.022달러)보다 약 37.7% 높은 상태였다. 빗썸 상장 직후 단기 반등이 나타났지만 이후에는 하락세가 이어지며 최초 글로벌 상장 가격 아래로 밀렸다.

불과 20일 사이 글로벌 최초 상장과 급등, 해외 현물시장 확대, 바이낸스 현물 상장 시점의 고점 형성, 빗썸 원화마켓 상장 이후 하락으로 이어지는 후행 상장 경로가 나타난 것이다.

ROBO만의 사례도 아니다. 국내 원화마켓의 신규 종목 공급 자체가 빠르게 늘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의 중복을 제외한 원화마켓 신규 상장은 3월 12건에서 6월 26건으로 3개월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이 같은 상장 확대가 글로벌 최초 상장보다 이미 해외에서 가격 발견을 거친 종목을 들여오는 후행 상장 구조 위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반등한 코인도 있었다…결국 관건은 ‘토크노믹스’

다만 언락 직후 국내 상장이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시장이 재단이나 초기 투자자의 ‘엑시트 창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조사 대상 가운데 캡은 국내 상장 30일 뒤 44.1% 상승했고 솔스티스는 41.2%, 카타나는 16.7% 올랐다. 다만 이들 종목의 상승세를 국내 상장이나 언락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카타나는 무기한선물 서비스 개편과 아이덱스 인수 효과가 부각됐고, 솔스티스는 최대 10억달러 규모의 유럽 AI 인프라 펀딩 파트너십이 상승 재료로 작용했다. 언락과 국내 상장의 시점이 맞물렸다는 사실만으로 이후 가격 흐름과의 인과관계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다만 원화마켓의 신규 상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투자자 개인의 주의뿐 아니라 거래소 차원의 상장 심사와 정보 공개 기준도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프로젝트의 기술력이나 거래 수요를 넘어 글로벌 최초 거래 이후 가격 변화와 실제 유통량, 재단 및 초기 투자자의 보유 비중과 향후 언락 일정까지 상장 심사 과정에서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거래소들은 거래지원 과정에서 유통 구조와 투자 위험 등을 검토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개별 종목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비트 관계자는 “거래지원 여부를 판단할 때 실제 유통 가능 물량과 락업 구조, 시장 유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프로젝트에서 확인한 정보를 바탕으로 월별 유통량 계획을 공시하고, 주요 내용 설명서를 통해 토큰 분배율과 유통 계획 등 주요 토크노믹스 정보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별 종목의 유통 일정 등이 내부 심사에서 어떻게 평가됐는지는 심사 절차의 공정성과 시장 악용 방지를 위해 공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빗썸 관계자 역시 “거래지원 시 해당 자산의 투자 위험을 충분히 안내하고 있으며, 이용자가 투명한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투자자 보호에 힘쓰고 있다”며 “다만 개별 종목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 내용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