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심영재 특파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장기 국채 바이백을 최소 두 배로 확대하면서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역할 경계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재무부는 19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오른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한 부채관리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융여건을 긴축하려는 시점에 정부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현지시각) 베선트 장관의 최근 조치들이 전통적으로 연준 영역으로 여겨져 온 금융여건과 장기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양 기관의 경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이 28일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연설을 앞둔 가운데 중앙은행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재무부의 역할 확대가 주요 논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장기채 바이백 최소 두 배…“19년 최고 금리 낮추겠다”

WSJ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지난주 미국 정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최소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목표는 19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상승한 장기 국채 수익률을 낮추는 것이다.

재무부의 장기채 매입이 수익률과 차입 비용을 낮추면 금융여건은 완화될 수 있다. 문제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반대로 금융여건을 더 긴축해야 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준은 현재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웃도는 상황에서 기준금리가 충분히 높은지를 놓고 내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세 명의 위원이 금리 인상에 찬성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존 파우스트 전 연준 의장 자문역은 WSJ에 베선트 장관의 채권시장 개입이 장기금리와 차입 비용을 실제로 낮춘다면 “FOMC의 거의 모든 구성원을 금리 인상 쪽으로 더 밀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선트 장관의 최근 행보에 대해 “정부 재정 조달을 위해 통화정책이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커지고 있다”며 “잭슨홀 직전에 이런 조치를 내놓은 것은 상당히 배려가 없거나 워시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 재무부 대변인은 WSJ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부채관리 결정이 전적으로 재무부의 재량에 있었다”며 “베선트 장관 아래 재무부는 미국 납세자의 장기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연방정부 자금을 조달한다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 권한을 되찾고 있다”고 밝혔다.

정례 발표 아닌 시점에 확대…바이백 목적 변화 논란

WSJ에 따르면 재무부는 통상 국채 발행과 부채관리 정책 변화를 분기별 정례 브리핑에서 발표한다. 그러나 이번 바이백 확대 발표는 정례 브리핑이 끝난 지 약 2주 뒤 나왔다.

재무부는 오랫동안 국채시장 참가자들에게 부채관리 정책을 “정기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운용하겠다고 약속해 왔다.

현재의 국채 바이백 프로그램은 2024년 출범했다. 기존 발행된 유동성이 낮은 국채의 거래를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WSJ에 따르면 지난주 발표 당시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는 없었다.

베선트 장관은 장기 국채 수익률 수준이 경제의 기초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WSJ은 이 같은 발언이 바이백 프로그램의 초점이 시장 기능 개선에서 장기금리 상승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무부가 향후 장기 국채 발행 규모를 줄이는 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장기물 입찰 규모 자체를 축소하면 바이백보다 수익률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베선트 장관은 취임 전에는 이러한 방식의 적극적인 부채관리가 위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고 WSJ은 전했다.

일본 달러 유동성·모기지채 매입까지…차입 비용 낮추기 잇단 조치

WSJ은 이번 국채 바이백이 베선트 장관과 트럼프 행정부가 차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 활용한 첫 번째 수단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베선트 장관은 이달 초 연준에 외국 중앙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달러 공급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엔화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채를 매도할 필요성을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WSJ은 설명했다. 일본이 외환시장 개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 국채를 매도하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률은 상승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초 정부 통제를 받는 주택금융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도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확대하도록 지시했다. 목적은 미국의 모기지 금리를 낮추는 것이었다.

베선트 장관은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 인선에도 관심을 나타냈다. 애틀랜타 연은은 지난 3월 이후 총재 자리가 공석이다.

WSJ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1년 넘게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 왔다. 이는 통화정책에 대한 직접 언급을 자제해온 역대 재무장관들의 관행과도 차이가 있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주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이 통화정책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무부와 연준이 “대차대조표에 변화가 생길 경우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무부 권한” 반론도…카시카리 “시장 정상 작동”

아타나시오스 오르파니데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교수는 WSJ에 재무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정부 부채를 관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채 바이백도 세금이나 정부지출 변화처럼 연준이 금리를 결정할 때 고려해야 하는 여러 정부 정책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연준의 역할은 재무부 정책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통화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2006~2009년 재무부에서 근무한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이번주 방송 인터뷰에서 최근 국채 매도세가 연준의 업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증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워시의 시장 중심 접근과도 충돌 가능성

WSJ은 재무부의 시장 개입이 워시 의장의 통화정책 운영 방식과도 긴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초단기 기준금리 하나를 결정한다. 이 금리는 장기 국채 수익률과 모기지 금리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장기금리는 향후 연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전망과 경제지표, 국채 수급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움직인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향후 정책을 시장에 지나치게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시장 가격에서 경제와 금융여건에 대한 왜곡되지 않은 신호를 얻기 위해서다. 그는 지난달 국채 수익률 상승을 시장이 스스로 금융여건을 긴축하고 있다는 근거로 언급했다.

그러나 재무부가 장기금리를 직접 낮추기 위해 개입한다면 국채 수익률이 투자자들의 경제 전망을 보여주는 신호인지, 정부 개입의 결과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1951년 ‘연준 독립’ 합의 다시 소환

WSJ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준은 전쟁 자금 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국채 수익률을 낮게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 이 같은 체제는 한국전쟁 자금 조달 문제를 둘러싼 갈등 끝에 1951년 재무부·연준 합의로 종료됐다. 이 합의는 현재 연준 독립성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1965년에는 린든 존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연준 의장을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베트남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금리를 인상한 것을 강하게 질책한 사례도 있다.

워시 의장은 지난해 1951년 합의를 현대적으로 새로 쓸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WSJ은 현재 워시 의장이 전쟁에서 비롯된 새로운 물가 압력에 대응하는 동시에 베선트 장관이 전쟁 종식을 목표로 한 경제적 정책 수단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유사한 긴장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베선트 장관과 워시 의장은 정부에 합류하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냈으며 대부분의 주에 조찬을 함께한다. 두 사람 모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와 긴밀하게 일한 경험이 있다.

드러켄밀러는 이번주 WSJ 기고문에서 재무부의 바이백 확대를 “가격 관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를 “40억달러라는 규모가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큰 실수”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