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함지현 기자] 올해 주요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가운데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지캐시(ZEC)를 두고 급등의 지속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 확대라는 구조적 호재가 존재하지만 채굴자들의 물량 축적과 숏스퀴즈 등 수급 요인이 가격 상승을 증폭시켰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에도 블룸버그 소속 ETF 분석가가 ZEC 열풍이 비트코인의 정치·문화적 지지까지 분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은 바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최근 ZEC가 올해 120% 이상 상승하며 비트코인을 크게 앞서지만 지속 가능성은 확신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투자자들이 ZEC에 투자할 때 최근 강한 내러티브가 된 ‘프라이버시 수요’뿐아니라 독특한 수급 구조, 기술적 위험 등을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ZEC 강세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 확대가 꼽혔다. ‘크립토는 이제 매크로다(Crypto is Macro Now)’의 노엘 애치슨 발행인은 “프라이버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최근 몇 년보다 지금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캐시가 오랜 기간 살아남은 디지털자산이라는 점 역시 시장에서 일정한 신뢰를 얻는 배경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부터 ZEC 랠리의 불씨가 본격적으로 붙었다. 엔젤투자자이자 초기 지캐시 후원자인 나발 라비칸트는 “비트코인은 법정화폐에 대한 보험이고, 지캐시는 비트코인에 대한 보험”이라고 평가했다. 윙클보스 형제 역시 ZEC를 축적·채굴하는 사이퍼펑크 테크놀로지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타일러 윙클보스는 지캐시를 ‘암호화된 비트코인(encrypted Bitcoin)’이라고 표현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랠리를 프라이버시 수요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카일 사마니 포워드인더스트리스 회장은 ZEC가 5~6년 동안 시장에서 사실상 잊혀 있던 자산이었다며 최근 ‘프라이버시를 갖춘 비트코인’이라는 투자 서사가 시장에서 강하게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비트코인이지만 프라이빗하다’는 서사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면서도 “마냥 좋아보일 수 있지만 여러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버시 코인’인데 실제 프라이버시 기능 사용은 제한적

지캐시는 모네로(XMR)처럼 모든 거래의 익명성을 의무화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공개주소와 거래 정보를 감추는 ‘실드 주소(shielded address)’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마니는 “실제로는 대부분의 이용자가 거래와 잔액을 숨기기 위해 지캐시의 차폐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버시 코인’이라는 투자 서사가 강해지는 것과 실제 네트워크 이용 행태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적 위험도 부각됐다. 지난 6월 보안 연구자가 거래 내역을 가리는 실드 풀인 ‘오차드(Orchard)’에서 건전성 문제를 발견한 데 따라 ZEC 가격이 약 50% 급락했다. 이후 투자자들이 다시 몰리며 가격은 반등했지만, 시장에서는 최근 급등 과정에서도 기술적 위험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ZEC 가격을 밀어 올린 데에는 독특한 수급 구조도 영향을 미쳤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사업으로 이동하는 디지털자산 채굴업체가 늘어나는 가운데 일부 채굴자들은 새로운 장비를 투입해 ZEC 채굴에 나섰다. 이들 가운데 일부 대형 채굴자는 새로 채굴한 ZEC를 시장에 매도하는 대신 보유하면서 가격 상승에 베팅했다.

시장에 나오는 신규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ZEC 상승론자와 하락론자가 맞붙으면서 숏스퀴즈도 발생했다. 가격 상승으로 숏 포지션이 강제 청산되고 이를 되갚기 위한 매수가 다시 가격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솔라나 기반 밈코인 ZCAT도 변수로 작용했다. ZCAT은 일정 규모 이상 토큰을 보유한 투자자에게 ZEC를 보상으로 지급하면서 추가적인 수요를 만들었다. 여기에 지난 8월 그레이스케일의 ZEC 신탁 상품이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로 전환되면서 일반 증권계좌를 통한 투자 통로도 확대됐다.

발추나스도 지난해 ZEC 열풍 경계…”비트코인 지지 분산시킬 수도”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ETF 분석가 에릭 발추나스는 지난해 11월 ZEC를 미국 대선의 ‘제3 후보’에 비유하며 비트코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발추나스는 당시 ZEC를 2012년과 2016년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자유당의 개리 존슨과 녹색당의 질 스타인에 빗댔다. 거대 양당 후보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일부 표를 가져가 전체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지캐시가 독자적인 경쟁 자산으로 성장하기보다 ZEC가 제시하는 프라이버시 등의 아이디어가 비트코인 생태계에 흡수되는 것이 낫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특히 비트코인이 정치적·문화적 지지를 결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ZEC가 이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ZEC를 둘러싼 과도한 홍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비트코인 투자자 마크 모스는 마케팅 업체로부터 받은 ZEC 유료 홍보 제안을 공개하며 최근 ZEC가 곳곳에서 언급되는 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장 분석가 라자트 소니 역시 당시 ZEC 열풍이 기존 투자자들의 ‘탈출 유동성(exit liquidity)’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처럼 보인다고 경고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윙클보스 형제를 비롯한 ZEC 지지자들은 지캐시가 비트코인을 대체하기 위한 경쟁자가 아니라 비트코인이 제공하기 어려운 금융 프라이버시를 보완하는 자산이라고 주장해왔다.

비트코인 OG도 ZEC로…”하지만 아직 일부”

최근에는 ZEC 강세가 비트코인 자체에 대한 일부 초기 투자자들의 불만과 연결된다는 분석까지 등장했다.

판테라캐피털의 코스모 장은 블룸버그에 지난 1년 동안 일부 초기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이 기관화되면서 더 이상 ‘자신들이 알던 비트코인’이 아니라고 판단해 BTC를 매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자산 트레이딩 데스크의 시장 분위기를 근거로 이들 가운데 일부가 매각한 자금의 일부를 ZEC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다만 그 규모는 아직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는 최근 스타크웨어 공동창업자 엘리 벤사손이 제기한 ‘비트코인 경직성’ 논쟁과도 맞물린다. 벤사손은 ZEC 상승의 일부가 비트코인이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우려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의 합의 규칙 변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프라이버시와 확장성 등 새로운 기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지캐시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시각이다.

결국 최근 ZEC 랠리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가격 전망을 넘어 ‘지캐시가 비트코인의 대안인가, 보완재인가’라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 확대와 일부 비트코인 초기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은 ZEC의 새로운 투자 논리를 만들고 있다. 반면 실제 차폐 기능 이용 수준과 과거 보안 취약점, 채굴자들의 물량 축적, 숏스퀴즈 등 최근 상승폭을 키운 단기적인 요인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 역시 최근 랠리가 지속 가능한 상승세인지, 아니면 다음 강세장에서 초기 투자자들이 다시 비트코인으로 돌아가기 전 나타나는 일시적인 자금 이동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