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리플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XRP렛저(XRPL)의 누적 거래가 50억건을 넘어섰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거래 대부분이 소수의 자동화 계정에서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네트워크 처리량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실제 이용자와 거래 체결 증가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현지시각) 크립토슬레이트와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비트쿼리(Bitquery)에 따르면 XRPL의 누적 검증 거래는 50억6000만건을 넘어섰다.

문제는 거래의 집중도다. 비트쿼리가 지난 8월 XRPL 거래를 분석한 결과 793개 송신 계정에서 7598만건의 거래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거래 8156만건의 93.2%에 해당한다.

특히 이 가운데 767개 계정은 자동화된 기계 계정으로 분류됐다. 이들이 전체 거래의 92%를 차지했다. 거래소 핫월렛 26개에서 발생한 거래는 전체의 1.1% 수준이었다.

거래 92%가 자동화 계정… 한 계정서 1300만건 발생

비트쿼리에 따르면 한 주소에서는 8월 한 달 동안 약 1300만건의 거래가 발생했다. XRPL 전체 거래의 약 6분의 1에 해당한다. 이 계정은 탈중앙화거래소(DEX)에 1279만건의 주문을 제출했지만 실제 거래로 체결된 것은 882건에 불과했다.

XRPL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주문 활동과 실제 체결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8월 XRPL에 기록된 거래는 8100만건을 넘었지만 내장 DEX에서 실제 체결된 거래는 약 297만건이었다. 거래에 참여한 계정은 1만2153개였다. 다시 말해 자동 주문 프로그램이 거래량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DEX 주문 봇에서 발생한 거래는 3925만건으로 8월 전체 거래의 48.1%를 차지했다. 소액을 여러 주소로 반복 전송하는 이른바 ‘더스트 스프레이’ 계정에서도 1879만건의 거래가 발생했다. 대체불가능토큰(NFT) 관련 자동화와 스팸성 거래 등을 합하면 기계가 만들어낸 거래 비중은 더 커진다.

반면 일반 계정의 활동은 제한적이었다. 8월 활동 계정 가운데 절반가량은 한 차례만 거래했고 약 80%는 거래 횟수가 5회 이하였다. 비트쿼리가 소액·고빈도 거래를 제외해 분석한 계정들은 전체 활동 계정의 89.6%를 차지했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거래량은 전체의 0.8%에 그쳤다.

다만 블록체인 주소 수를 실제 이용자 수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거래소의 핫월렛 하나가 수천명의 고객 거래를 처리할 수 있고 반대로 한 기관이 여러 주소를 운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래 계정은 줄었는데 거래량 79% 증가… 기관 참여 영향 가능성

거래 집중을 단순히 네트워크 이용 감소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기관과 전문 투자자의 거래 비중이 커진 결과일 가능성이 있어서다.

에버노스리서치(Evernorth Research)에 따르면 올해 2분기 XRPL 오더북의 하루 평균 거래량은 357만XRP로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반면 거래를 시작한 계정은 하루 평균 1864개에서 1111개로 약 40% 감소했다.

이에 따라 계정당 평균 거래량은 1072XRP에서 3217XRP로 약 세 배 증가했다. 참여자는 줄었지만 계정 하나가 거래하는 규모는 크게 늘어난 것이다.

XRPL 전체 DEX의 하루 평균 거래량도 442만XRP로 전년 동기보다 약 20% 증가했다. 하루 평균 거래 계정은 약 2435개였다.

에버노스는 XRPL이 기관투자자를 겨냥한 인프라를 확대하면서 전문 투자자와 기관의 거래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광범위한 이용자 참여를 보여주는 지표는 약화됐다. 하루 평균 거래 계정은 1만6587개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5% 감소했다. 신규 계정도 하루 평균 2783개로 약 25% 줄었다.

‘50억건’보다 중요한 실제 유동성… XRP 활용 여부가 관건

시장에선 XRPL의 성장 여부를 판단하려면 단순한 거래 건수보다 실제 체결과 반복 이용자 그리고 유동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XRPL 자체의 활용도가 높아져도 XRP가 결제나 담보 유동성 공급을 위한 중간 자산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네트워크 성장 효과가 XRP 수요로 직접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XRPL은 누적 거래 50억건이라는 상징적인 기록을 넘어섰지만 8월 거래의 92%가 자동화 계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단순한 거래 건수만으로 네트워크의 실제 이용 수준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장은 자동화 중심의 대규모 거래가 실제 체결 증가와 반복 이용자 확대 그리고 XRP를 거치는 유동성 증가로 이어지는지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크립토슬레이트는 “소수 전문 투자자 중심의 기관화 과정인지 단순히 봇이 만들어낸 거래 증가인지에 따라 ‘50억건 돌파’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