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전력 인공지능(AI) 반도체인 신경망처리장치(NPU) 시장이 커지면서 삼성전자·SK텔레콤(SKT)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국산 NPU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NPU 시장 규모는 59억9000만 달러(약 8조500억원)에서 2032년 560억8000만달러(약 75조4000억원)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연평균 35%씩 성장한 결과다.
이렇게 NPU 시장이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효율’이 있다. NPU는 AI 연산에 특화된 반도체로,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전력 소모가 적어 다양한 기기에 탑재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 전력과 공간에 제약이 있는 기기에서 AI를 구동하는 ‘온디바이스 AI’ 구현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출자한 벤처투자조합이 피지컬AI 반도체 기업 딥엑스에 투자했다. 업계에 따르면 딥엑스는 지난 7일 이사회를 열고 삼성벤처투자가 운용하는 ‘SVIC 33호 신기술사업투자조합’과 삼성증권을 대상으로 약 147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SVIC 33호가 약 72억원, 삼성증권이 약 75억원을 각각 딥엑스에 투자한다.
SVIC 33호는 삼성전자의 종속기업으로 확인된다. 올해 삼성전자의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SVIC 33호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은 삼성전자가 지분율 99%를 보유 중이다.
딥엑스는 삼성전자와 긴밀히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딥엑스의 첫 양산 제품인 ‘DX-M1’은 삼성전자 5나노 공정으로 생산되고, 차세대 제품인 ‘DX-M2’는 삼성전자 2나노 공정을 활용해 개발 중이다.
딥엑스는 NPU 수출을 통해 글로벌 실적을 쌓고 있다. 지난해 DX-M1 양산 이후 약 1년간 한국과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10여개 국가에서 77건, 1300만달러(약 175억원) 이상의 상업용 구매주문(PO)을 확보한 바 있다. 또 영업·개발 기반도 확대하고 있다. 전 세계 27개 반도체 유통사와 판매·공급망을 구축하고, 라즈베리 파이와 바이두 패들패들, 울트라리틱스 등 글로벌 개발 생태계와의 연결을 넓혀 왔다.
이번 증자는 딥엑스가 진행 중인 시리즈D 라운드의 일환이다. 딥엑스는 조달 자금을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과 양산 준비, 글로벌 고객·공급망 확대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국민성장펀드의 첫 직접투자 사례로 꼽히는 리벨리온은 SKT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산 NPU의 상용화 범위를 넓히고 있다. SKT는 2026년 3월 리벨리온의 6400억원 규모 프리IPO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다. SKT는 2024년 AI 반도체 자회사 사피온코리아와 리벨리온의 합병을 계기로 SK하이닉스·SK스퀘어 등 그룹 계열사와 함께 리벨리온 지분 약 18.2%를 보유하고 있다.
리벨리온은 SKT의 상용 AI 서비스 4개의 핵심 기능에 적용되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에이닷 통화요약 ‘한 줄 요약 기능’ ▲에이닷 ‘음성합성기능(스트리밍 TTS)’ ▲AI콘택트센터(AICC) ‘상담 후처리 및 검색 시스템’ ▲스캠뱅가드 ‘미끼문자 탐지 기능’에 순차적으로 NPU를 도입했다. 현재 이들 총 4개 서비스에서 리벨리온 인프라가 감당하는 실시간 AI 트래픽은 하루 약 1400만건에 달한다.
리벨리온은 SKT의 AI 파운데이션 모델 ‘에이닷엑스 케이원(A.X K1)’ 구동에 이어 이번 상용 서비스 확대까지 성공시키며 소버린 AI의 실질적 성과를 입증했다. 향후 검증된 대규모 트래픽 처리 역량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금융·통신·공공 등 다양한 산업으로 NPU 인프라 공급을 넓혀갈 계획이다.
퓨리오사AI도 투자 유치와 해외 사업 확대를 통해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퓨리오사AI는 지난해 카카오인베스트먼트로부터 30억원을 투자받았다. 올해에는 네이버와 미국 네트워크·정보기술(IT) 기업 시스코시스템즈가 약 8200억원 규모의 시리즈D 투자 라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공 분야에서도 국산 AI 반도체의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퓨리오사AI와 업스테이지 등은 국산 AI 반도체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결합한 챗 서비스 실증에 나선다.
해외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 퓨리오사AI는 미국 AI 인프라 기업 I/ONX HPC, 데이터센터 개발·운영사 벨록스(Velox)와 협력해 스웨덴 스톡홀름의 15메가와트(MW) 규모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오는 2027년 초 2MW 규모 시설을 우선 가동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사업이다.
퓨리오사AI는 1단계에서 자사 AI 추론 가속기 ‘레니게이드(RNGD)’ 1800장을 공급하고, 전체 확장 단계까지 합산해 8800장 이상을 순차적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모빌린트는 산업 현장을 넘어 우주 분야까지 NPU 적용처를 넓히고 있다. 올해 2월 포스코DX와 포스코기술투자가 공동 출자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투자조합으로부터 30억원을 투자받았다. 같은 해 4월에는 포스코DX와 업무협약을 맺고 NPU를 제조 현장에 적용해 산업 현장의 ‘AI 전환(AX)’을 추진하기로 했다.
모빌린트의 AI 반도체 ‘REGULUS(레귤러스)’ 기반 NPU 보드 2종은 최근 누리호 5차 발사에서 우주의약 실증 위성 ‘BEE-1012’에 탑재됐다. 탑재된 NPU 보드는 각각 KAI·펀진과 협력한 위성 상태 분석용 보드와 스페이스린텍의 단백질 결정 성장 관찰·이미지 분석용 보드다.
KAI·펀진과 협력한 NPU 보드는 위성 상태 데이터를 분석하는 AI 모델을 구동한다.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원인을 식별하는 데 필요한 연산을 수행해 위성의 자율적인 고장 대응과 운용 판단을 지원한다.
스페이스린텍과 협력해 개발한 NPU 보드는 미세중력 환경에서 촬영한 단백질 결정 성장 이미지를 분석한다. 결정의 성장 상태를 판단하고, 분석 결과를 실험 조건 조절과 필요한 데이터 선별에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