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F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사이에 놓이는 새로운 메모리 계층이다. HBM처럼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으면서도 낸드를 기반으로 해 용량을 크게 키울 수 있다. AI 추론이 확산하며 다뤄야 할 데이터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대역폭과 용량 확장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는다. HBF는 HBM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용되면서 AI 추론 효율성 전반을 높일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이번 규격은 지난해 8월 샌디스크와 HBF 표준화 협력에 나선 데 이어 올해 2월 컨소시엄을 출범한 지 약 6개월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용량은 낸드 다이를 8단과 16단으로 쌓는 두 가지 스택 구성을 기준으로 최대 512GB까지 정의했다. 대역폭은 세 등급으로 나눠 1초당 0.4TB에서 3.0TB까지 구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HBF와 연산장치 연결은 업계 표준인 유니버설 칩렛 인터커넥트 익스프레스(UCIe)를 채택해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 종류가 다른 프로세서에도 HBF를 유연하게 연결해 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규격 공개는 세계 최대 개방형 데이터센터 기술 협력체인 OCP를 통해 이뤄져 특정 기업을 넘어 업계 전체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개방형 표준으로 쓰인다. SK하이닉스는 이번 표준 공개를 계기로 AI 스토리지 시장에서 HBF 채택을 확대하고 생태계 조성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HBF 도입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다. 삼성전자도 HBF 개발에 나섰지만 상용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2030년께 상용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를 이끄는 엔비디아가 도입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은 엔비디아가 이끄는 '추론 맥락 메모리 스토리지(ICMS)'로 아직 메모리 반도체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CMS도 낸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스토리지 제품이며 이 역시 HBM과 SSD 사이에 있다. 엔비디아 베라 루빈 플랫폼에 이미 쓰이는데 낸드 플래시 가격 급등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HBF나 ICMS 같은 제품이 등장하게 된 것은 AI 추론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높아지는데 HBM 등 D램 가격이 지나치게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고성능이 필요하지 않은 AI 추론 부분은 속도가 느린 낸드 메모리에 맡기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HBF 개발에 참여한 김정호 KAIST 교수는 "이번 표준 발표는 HBF 생태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구글, 텐스토렌트 외에도 AMD를 비롯해 여러 기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FMS 2026에서 김천성 SK하이닉스 부문장과 강욱성 담당이 'AI 에이전트 시대, 계층형 메모리에 기반한 AI 인프라의 효율적 구현 방안'이라는 내용으로 기조연설을 한다고 밝혔다. 김천성 부문장은 "HBF를 통해 메모리와 스토리지 간 경계를 확장하고 시스템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아키텍처 구현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