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심영재 특파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디지털자산(가상자산)과 관련된 투자계약의 증권 발행 규제를 별도로 설계한 ‘디지털자산 발행 규칙(Regulation Crypto Assets)’을 제안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최대 7500만달러 규모의 자금조달에 증권 등록 의무를 면제하고, 발행사의 핵심 경영 활동이 끝난 디지털자산에는 조건부 세이프하버를 적용하는 내용이다.

SEC에 따르면 위원회는 18일(현지시각) 디지털자산 관련 특정 투자계약에 적용할 새로운 규칙을 제안했다. 지난 3월 디지털자산과 관련 거래에 연방 증권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제시한 해석 지침을 구체적인 발행 규제로 연결하는 조치다. SEC는 미국 내 자금조달과 혁신을 가로막아 온 장벽을 낮추면서 투자자 보호 장치는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500만달러·7500만달러 두 갈래 등록 면제

SEC가 제안한 핵심은 디지털자산과 관련된 특정 투자계약을 위해 별도의 증권 발행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SEC에 따르면 새 규칙에는 1933년 증권법상 등록 의무를 면제하는 두 가지 제도가 담겼다.

첫 번째는 4년 동안 최대 500만달러까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일회성 면제다. 두 번째는 매 12개월 동안 최대 7500만달러까지 발행할 수 있는 면제다.

두 제도 모두 발행사가 투자자에게 일정한 원칙에 기반한 서술형 공시를 제공해야 한다. 다만 7500만달러 한도를 적용받는 두 번째 제도에는 추가 의무가 붙는다. 발행사는 재무제표를 제공해야 하며 지속적인 보고 의무도 부담한다.

기존 증권법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은 아니다. 디지털자산을 통한 자금조달에 기존 증권 등록 절차와 다른 맞춤형 통로를 추가하는 구조다.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디지털자산 발행 규칙(Regulation Crypto Assets)은 디지털자산 기업가와 시장 참여자에게 연방 증권법 아래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명확한 경로를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SEC는 이번 규칙이 지난 3월 내놓은 해석 지침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SEC는 특정 디지털자산과 관련 거래에 연방 증권법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명확히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는 해석을 넘어 실제 발행과 자금조달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규제 체계를 제안한 셈이다.

핵심 경영 활동 끝나면 ‘투자계약’ 세이프하버

SEC에 따르면 제안된 규칙은 1933년 증권법과 1934년 증권거래법에 규정된 ‘증권’의 정의 가운데 ‘투자계약’에 대해 조건부 세이프하버를 마련한다.

정해진 조건을 충족한 디지털자산은 해당 법률상 투자계약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중요한 판단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발행사가 투자계약을 통해 약속했던 핵심적인 경영 활동을 완료했는지 여부다.

해당 활동을 영구적으로 중단한 경우에도 세이프하버 적용 가능성을 열어놨다.

앳킨스 위원장은 발행사가 투자계약에서 약속한 “모든 핵심 경영 활동을 완료하거나 영구적으로 중단한 경우” 세이프하버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디지털자산 자체와 디지털자산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투자계약을 구분하려는 SEC의 접근을 제도화하는 대목이다.

다만 SEC 발표문만으로는 모든 디지털자산이 일정 시점 이후 자동으로 증권이 아니게 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 세이프하버는 제안된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해 적용된다.

주 증권법 일부 선점…2차시장 거래도 포함

SEC에 따르면 디지털자산 발행 규칙(Regulation Crypto Assets)의 면제 규정에 따라 발행되는 증권의 청약과 판매에는 주 증권법상 등록 및 자격 요건을 연방법이 우선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디지털자산 발행사가 연방 차원의 면제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각 주의 별도 등록·자격 규정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는 방향이다.

SEC는 미국 내 디지털자산 발행과 거래에 보다 일관된 규제 환경을 구축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큰화와 디지털자산 시장이 주 경계를 넘어 거래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연방과 주 규제의 관계는 향후 최종 규칙을 둘러싼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해외로 나갈 유인 줄인다”…미국 내 혁신 강조

SEC가 이번 제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단어는 ‘명확성’과 ‘온쇼어(onshore)’다.

SEC는 올해 초 발표한 해석 지침과 이번 규칙을 결합해 디지털자산이 언제 연방 증권법의 적용을 받는지 명확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발행사들이 미국 밖에서 사업 구조를 만들고 운영하도록 유도하는 규제상 유인도 줄인다는 방침이다.

미국 투자자에게 더 많은 투자 기회를 제공하면서 일관된 투자자 보호 체계를 적용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이번 규칙을 “현대 시대에 맞춰 규칙 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의 핵심 요소”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를 “향후 여러 세대에 걸쳐 디지털자산 시장의 혁신을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또 하나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앳킨스 위원장은 의회가 지속적인 규제 체계를 마련하는 동안 SEC 역시 시장에 명확성을 제공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의회의 포괄적인 시장구조 입법을 기다리는 것과 별개로 SEC가 현행 연방 증권법 안에서 적용 가능한 디지털자산 발행 규칙을 먼저 구체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최종 확정 전 60일 의견 수렴

디지털자산 발행 규칙(Regulation Crypto Assets)은 아직 확정된 규정이 아니다. SEC에 따르면 제안 규칙은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 게재된 날부터 60일 동안 공개 의견을 받는다.

따라서 500만달러와 7500만달러의 면제 한도, 공시와 지속 보고 의무, 조건부 세이프하버 등 세부 내용은 의견 수렴과 후속 절차에서 변경될 수 있다.

이번 제안이 최종 확정될 경우 미국 디지털자산 시장에는 별도의 증권 발행 경로가 만들어진다.

특히 투자계약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초기 단계와 발행사의 핵심 경영 활동이 종료된 이후를 규제상 구분하는 틀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SEC는 이를 자본 형성과 혁신을 촉진하면서 연방 증권법의 핵심인 투자자 보호를 유지하기 위한 맞춤형 체계라고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