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함지현 기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가상자산 시장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 없이도 상당수 디지털자산(가상자산)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회 입법이 규제 정비에 속도를 더할 수는 있지만, SEC가 기존 권한을 활용해 움직이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선결 조건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테일러 린드먼 SEC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의 수석법률고문은 지난 25일(현지시각) 공개된 코인데스크 팟캐스트 ‘더 폴리시 프로토콜’에서 SEC의 가상자산 정책 추진 방향을 설명했다.
그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우리가 이미 보유한 권한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클래리티법이 통과됐다면 작업을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법안 처리와 별개로 규제 정비를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다.
SEC는 그동안 의회 입법만을 기다리기보다 공개 토론회와 서면 의견 수렴, 업계·전문가 면담을 통해 현행 증권법을 디지털자산 시장에 적용할 방안을 모색해왔다. TF의 주요 과제는 증권과 비증권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디지털자산과 시장 중개업체에 현실적인 등록 경로와 특성에 맞는 공시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실제로 SEC는 지난해 3월 디지털자산의 증권성 판단을 시작으로 거래 규제, 수탁, 자산 토큰화, 탈중앙화금융(DeFi)을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잇달아 개최했다. 기존 금융 규제를 블록체인 기반 시장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와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한 것이다.
서면 의견 접수도 이어지고 있다. SEC는 TF에 제출된 의견을 공개하며 시장 참여자 간 논의와 후속 의견 교환을 유도하고 있다. 증권성 판단부터 거래·수탁·토큰화·규제 면제까지 다양한 쟁점에 대한 제안을 받으며 제도 설계에 필요한 의견을 축적하는 방식이다.
Taylor Lindman of the @SECGov Crypto Task Force says much of the agency’s crypto agenda falls within its existing authority. CLARITY would have accelerated that work, but the SEC doesn’t need it to move forward.
“So much of this is within our existing authority.” pic.twitter.com/rRWPRqLZac
— CoinDesk (@CoinDesk) September 28, 2026
기존 권한을 활용한 조치는 이미 구체화됐다. SEC는 지난 17일 일부 토큰화 주식의 온체인 거래를 지원하기 위한 한시적·조건부 ‘혁신 면제’를 발표했다. 이는 1934년 증권거래법에 근거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토큰화 증권 거래시설과 유동성 공급자에 각각 거래소·딜러 정의 적용을 면제하는 내용이다. 다만 사기와 시세조종을 금지하는 증권법 조항은 그대로 적용된다.
당시 폴 앳킨스 SEC 위원장은 클래리티법의 의회 처리 불발을 언급하면서도 “법정 권한 안에서 자본시장의 온체인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면제에 대한 시장 의견을 받아 후속 제도 개선에 반영하고, 한시적 조치를 지속 가능한 정식 규칙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존 권한을 활용한 규제 정비가 의회 입법을 전면 대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클래리티법은 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역할을 구분하고 CFTC에 가상자산 현물시장 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등 시장구조 전반을 다루는 법안이다. 린드먼의 발언은 입법의 필요성을 부정하기보다, SEC 소관 영역에서 가능한 조치부터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