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함지현 기자] 싱가포르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이자 지급을 금지하고 불법 활동에 이용된 스테이블코인을 추적·동결·소각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안을 내놨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1일 결제서비스법(PS Act)을 개정해 ‘MAS 단일통화 스테이블코인(MAS-SCS)’ 규제 체계를 법제화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수렴에 착수했다. MAS는 2023년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의 기본 방향을 확정했으며, 이번 개정안에는 이후 시장과 규제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추가 규제 방안이 담겼다.

핵심은 ‘MAS 규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별도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MAS는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결제토큰(DPT)의 하위 범주로 명확히 규정하는 한편, MAS의 인가를 받은 발행사만 자사 토큰을 ‘MAS 규제 스테이블코인’으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스테이블코인 발행(stablecoin issuance)이라는 새로운 라이선스 유형을 도입한다.

발행사는 유통 중인 스테이블코인의 액면가 이상에 해당하는 준비자산을 유지해야 한다. 이용자가 상환을 요청하면 MAS가 정한 기간 안에 페깅된 통화로 상환해야 하며 자금세탁방지·테러자금조달방지(AML/CFT), 기술 위험 관리 및 소비자 보호 규정도 적용 받는다.

특히 MAS는 규제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이자나 수익 등 경제적 혜택을 지급하는 것을 금지할 계획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단순 보유하는 것만으로 수익을 얻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MAS는 이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투자·저축 상품이 아니라 ‘결제수단 또는 교환수단’으로 명확히 구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발행사와 제3자 사이의 수익 공유나 유통·서비스 등 상업적 계약까지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준비자산 규제도 강화될 전망이다. MAS는 시장 스트레스 상황에서 대규모 상환 요구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자산 가운데 일정 비율을 현금이나 은행 예금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율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발행량이나 개인별 보유량에 상한을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특정 스테이블코인이 지나치게 커질 경우 발행사 파산이나 디페깅이 금융시장 전체로 전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금융시장에의 ‘위험 전이’ 차단…비은행 법인 설립·자금세탁 통제권 강화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한층 강한 규제가 적용된다.

MAS는 금융 시스템에 시스템적 위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지정 시스템적 스테이블코인(Designated Systemic Stablecoin)’으로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할 계획이다.

주목할 점은 발행 지역과 관계없이 규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밖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이라도 싱가포르 금융 시스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경우 시스템적 스테이블코인으로 지정할 수 있다. 규제를 준수하지 않으면 싱가포르 내 유통을 제한할 수 있다.

시스템적 여부를 판단할 때 △글로벌 및 싱가포르 내 유통 규모 △싱가포르 결제 시스템과의 연결성 △금융시장 및 무역금융·국경 간 결제에서의 활용도 △대체 가능한 다른 결제수단 또는 스테이블코인의 존재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예정이다.

규정을 위반한 시스템적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거래소 등 싱가포르 내 DPT 서비스 제공업체에 거래 지원 종료를 명령하거나 관련 거래쌍 제공을 중단시키고 이용자의 추가 매수를 제한할 수 있다.

은행들이 MAS 규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별도의 비은행 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해당 법인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MAS-SCS 규제를 적용받는 구조다.

MAS는 이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사업의 위험이 은행 본체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고 준비자산 역시 은행 자산과 명확히 분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의 ‘토큰화 예금(tokenised deposits)’ 발행은 별도로 허용하며 관련 지침을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규제안은 스테이블코인을 금융투자상품보다 ‘디지털 결제수단’으로 규정하되, 규모가 커질수록 은행과 유사한 수준의 안정성과 통제 장치를 요구하겠다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MAS는 규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자신이 발행한 토큰을 추적(trace)하고 필요할 경우 동결(freeze) 또는 소각(burn)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도록 할 방침이다.

MAS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안정성과 높은 유동성, 상호운용성, 빠른 국경 간 송금 등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이 같은 특징이 범죄자에게도 매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기존 고객확인(KYC), 트래블룰, 거래 스크리닝에 더해 불법 활동에 이용된 스테이블코인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기능을 요구하기로 했다. 모든 보유자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비수탁형(unhosted) 지갑의 규제 스테이블코인 보유를 제한하는 방안 등도 추가 검토 대상에 올렸다.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도 ‘MAS 인정’ 길 열린다

반대로 해외 규제를 충실히 준수하는 스테이블코인에는 싱가포르 시장 진입의 문을 열어준다.

MAS는 자국의 MAS-SCS 규제와 실질적으로 동등한 규제를 받는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제한된 수를 개별 심사를 통해 ‘인정된(recognised)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해당 발행사가 MAS와 실질적으로 동등하다고 판단되는 해외 규제 체계의 감독을 받아야 하며, MAS와 해당 국가 감독기관 사이에 정보 공유와 감독 협력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싱가포르와 해외 법인이 동일한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발행하는 ‘다중 관할권 발행(MJI)’도 조건부로 허용한다. MAS는 2023년에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지만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발전한 점을 고려해 입장을 바꿨다.

다만 공동 발행사의 전체 준비자산은 유통량 액면가의 최소 100%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여러 국가의 규제가 서로 다를 경우 준비자산 구성이나 상환 조건 등에 원칙적으로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도록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