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하나에도 시장이 와장창 반응하는 상황이 계속 생깁니다. 롤러코스터가 계속된다는 걸 머릿속에 둬야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 중간선거 이후 국내외 증시가 급락한 것과 관련해 주식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풀린 막대한 자금이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 집중되면서 작은 충격에도 주가가 크게 출렁이는 구조가 됐다는 진단이다.

최 회장은 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김종섭홀에서 열린 ‘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 특강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강연에는 서울대 경제학부 재학생 등 450여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의 발언은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SK 계열사에 미칠 영향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는 “중간선거가 어떻게 됐든 ‘우리와 무슨 관계냐’고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면서도 “오늘 주가가 많이 떨어진 걸로 봐서는 중간선거 결과가 반도체에 별로 좋지 않았다고 시장이 평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국내 증시에서는 SK하이닉스(9%대↓), 삼성전자(7%대↓) 등 반도체주가 급락했다. 간밤 미국 증시에서도 엔비디아 주가와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각각 3.1%가량 하락했다.

최 회장은 증시가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는 원인으로 과잉 유동성을 지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이 대규모로 돈을 풀었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시중 자금이 더욱 불어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돈은 너무 많이 풀렸다”며 “AI가 돈이 된다고 하니까 너무 많이 들어갔고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가 오른다고 하니까 한꺼번에 몰려가서 사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조정이 들어오면 혼란이 생기고 너무 많이 올라간 만큼 너무 많이 빠지기도 한다”며 “이런 롤러코스터 장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AI 투자 경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6월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해 “그때 저도 ‘이거 이렇게 발표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투자 발표를 하겠다고 한 게 2100조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200조원만 투자한다고 해도 엄청난 투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10배가 넘어간다”며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고 돈의 크기와 개념도 너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가 이 게임에 들어와 있다”며 “우리도 이렇게 베팅하지 않고서는 쫓아갈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AI 혁명이 가져올 변화도 반도체나 정보기술(IT) 산업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AI를 중심으로 여러 산업에서 혁신이 동시에 일어나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세계 경제의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한국 경제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안팎의 여건이 녹록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성장, 부채 증가 등으로 내부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가운데 G2 패권과 AI 혁명, 자본전쟁에 의한 외부 위협까지 더해졌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소비와 중국의 제조를 중심으로 유지돼 온 글로벌 분업 구조가 흔들리면서 한국은 미국의 투자 요구와 중국의 기술 추격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최 회장은 한국 경제의 돌파구로 신자본주의, AI 중심 국가, 한일 경제연대, 성장 유인체계 등 네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신자본주의는 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면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AI 중심 국가는 에너지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AI 모델 등 핵심 분야의 경쟁력을 키워 한국을 ‘지능 수출국’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한일 경제연대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국내총생산(GDP) 2조달러의 한국과 4조달러인 일본의 경제가 묶이면 그 파급력은 단순히 3배가 아닌 그 이상 커질 것”이라며 양국의 협력 확대를 주문했다.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수록 규제 부담이 커지는 구조에서는 기업 스스로 성장을 포기할 수 있다는 취지다.

최 회장이 서울대 경제학부 학생들과 만난 것은 2022년 4월 ‘시장의 변화, 미래의 기업’ 특강 이후 약 4년 반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