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기반의 신소재 혁명은 이제 막 변곡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포항 공장에서는 내년부터 가전·전자제품 등에 적용될 그래핀을 본격 양산할 예정입니다.”

최근 경기도 수원에 있는 그래핀스퀘어 연구소에서 만난 홍병희 그래핀스퀘어 대표는 그래핀 상용화에 대한 계획을 이같이 밝혔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의 육각형 격자를 이루는 2차원 소재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아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홍병희 대표는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그래핀 분야 세계적 석학으로, 지난 2012년 그래핀스퀘어를 설립했다. 홍 대표는 앞서 2009년 화학기상증착법(CVD)을 활용한 대면적 그래핀 합성 연구를 네이처에 발표했다. CVD 기법이란, 탄화수소 가스를 고온에서 분해해 원자 1개층의 완벽한 2차원 벌집 구조 필름을 구리 촉매 위에 직접 성장시키는 합성 기술이다. 구리보다 100배 빠른 전기 전도성, 다이아몬드보다 2배 높은 열 전도성이 발현된다.

이듬해에는 롤투롤(Roll-to-Roll) 기반 30인치 그래핀 전사 기술을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게재했다. 합성·에칭·전사 등 과정을 연속적으로 구현해 생산성을 극대화한 기술이다.

회사의 경쟁력은 대면적 그래핀 필름의 품질 균일도를 높이는 연속 생산 기술에 있다. 그래핀스퀘어는 약 200m 길이의 구리 포일을 연속 합성에 활용해 공정 조건의 편차를 줄이고 필름의 품질 균일도를 높였다. 또 생산 공정에 인공지능(AI) 비전 기반 비파괴 검사를 도입해 불량 검출과 품질 관리를 자동화하고 있다. 추후 대량 생산을 위한 원가 절감과 생산 효율 개선도 병행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구리 식각 용액을 활용해 그래핀 생산 과정에서 활용된 구리를 최대 97%까지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내후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그래핀스퀘어는 지난해 420억원을 투자해 포항 블루밸리국가산업단지에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전세계 수요보다 많은 연간 30만㎡ 규모의 CVD 그래핀 필름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는 클린룸과 롤투롤 합성 라인, 모듈 조립 라인의 시운전을 마쳤으며 고객사 샘플 공급과 가전 모듈 초도 양산을 위한 공정 튜닝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가전 파트너사와 조율 중인 양산 물량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7년 초에는 공장 가동률을 70~8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분야는 소형 가전이다. 그래핀 발열체를 적용한 조리기구와 헤어·뷰티 디바이스 등이 제품화 단계에 있다. 조리기기인 멀티쿠커는 상·하판에서 열을 내는 구조로, 중적외선을 이용해 조리한다. 회사는 제품의 KC 인증과 양산업체 선정 절차를 진행 중이며, 2027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헤어·뷰티 디바이스도 2027년 1분기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중적외선이 모발 깊숙이 전달돼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스타일링할 수 있고 에너지 소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홍 대표는 “그래핀 소재를 적용한 멀티쿠커는 기존 제품(1.2~1.5kW)의 절반 수준인 약 600W의 전력으로 작동해 배터리로도 충전해 조리할 수 있다”며 “그래핀이 방출하는 중적외선이 식재료에 효율적으로 전달돼 적은 에너지로도 조리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효율도 30% 정도 높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극자외선(EUV)노광 장비용 펠리클과 패키징용 방열·전자파 차폐 소재가 개발 대상이다. EUV 펠리클은 장비 내 장시간 내구성을 검증하는 단계로, 2029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방열·차폐 소재 역시 2027~2028년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다.

홍 대표는 “포항을 중심으로 연구소와 대학, 제조 공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글로벌 그래핀 밸리’를 완성하는 게 목표”라며 “대한민국이 탄소 소재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그래핀의 기술적·산업적 실체를 증명해 보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