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환율 전망에 ‘환테크’ 수요의 무게중심이 달러에서 엔화로 옮겨가고 있다. 한때 1550원대를 기록했던 달러당 원화값이 최근 1300원대에 머무는 가운데, 앞으로도 달러 가격이 좀처럼 반등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달러 수요가 정체됐다. 반면 엔화당 원화값이 역대급 저점인 850원대까지 밀리자 엔화 가격은 점차 오를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총 691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과 비교하면 71억9000만달러 급감한 수치다. 달러예금 잔액은 올해 3월 587억8000만달러로 연저점을 기록한 뒤 꾸준히 불어나며 지난달 763억4000만달러까지 늘었지만 이달 들어 증가세가 꺾였다.

반면 엔화예금의 증가세는 가파르다. 5대 은행의 엔화예금 잔액은 지난 15일 기준 1조1305억엔으로, 지난달 말(1조827억엔) 대비 478억엔 늘어났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늘어난 규모(438억엔)를 이미 뛰어넘은 수치다. 올해 1월 1조648억엔이었던 엔화예금 잔액은 5월에 8796억엔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이후 꾸준히 증가하며 석 달 반 새 2509억엔 급증했다.

최근 엔화로 수요가 쏠린 현상은 엔화 가격이 저점을 찍고 다시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올 7월 초 100엔당 930원대까지 진입했던 엔화당 원화값은 이후 꾸준히 밀려나며 지난달 말 850원대에 들어섰다. 그간 엔화가 약세를 보인 반면, 원화는 강세를 이어간 흐름이 엔화 가격을 끌어내렸다.

엔화 약세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영향이 컸다. 일본은행(BOJ)이 지난 6월 기준금리를 1%로 올렸지만 미국과의 격차가 여전히 커 낮은 금리로 엔화를 조달해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유인이 계속됐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금리 인상에 신중한 태도를 보인 데다 확장적 재정 지출 기조를 본격화한 것도 엔저를 부추겼다.

반면 원화는 같은 기간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수출기업의 달러화 매도 물량 대규모 출회, 경제성장률 전망 상향,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며 강세 흐름을 탔다.

다만 최근엔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원화가 강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엔화도 약세에서 벗어나 강세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다. 우선 미국이 과도한 엔저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잇달아 내비치면서 미·일 통화당국이 엔저 저지 공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렸다. 여기에 BOJ가 물가 상승 압력과 임금 인상 흐름을 근거로 추가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분석도 엔화 강세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시장에서는 BOJ가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를 높일 경우 엔화 매수 유인이 한층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달러 환테크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옅어졌다는 평가다. 원화가 탄탄해진 경제 펀더멘털을 토대로 당분간 달러 대비 강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초 1555원대까지 급락했던 달러당 원화값은 최근엔 대외 여건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으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까지 21거래일 연속 1300원대 주간거래 종가를 유지하고 있는데, 연말까지 1300원대에서 등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달러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작아진 만큼 지금 달러를 사둬 환차익을 노리려는 수요도 작아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