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위험하다" 주요 CEO들 이례적 공감
반도체 주식, 단기 하방 압력… SK하이닉스 등 선물 하락
설비 투자 '수익화 전환' 시간벌기 시각도
[블록미디어 James Jung 기자]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에 으르렁거리기만 하던 주요 기업 CEO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AI 안전성을 확보할 때까지 개발 속도를 늦추자는 것.
이른바 ‘AI 속도 조절론’이 주요 기업 주가와 관련 주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월가에서는 반도체 주식 등에 단기적으로 하락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우려하면서, AI 기업들이 수익화를 위한 시간벌기에 들어감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투자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공급망 주가 단기 하방 압력… SK하이닉스 선물 하락
주요 AI 기업 수장들이 개발 속도 조절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식시장, 특히 반도체 및 기술주를 중심으로 단기적인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AI 모델 개발 속도가 느려질 경우 관련 기업들의 이익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는 것.
반도체 제조업체와 공급망 관련 주식이 초기 매도세의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로 블록체인 기반 거래 플랫폼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에서 SK하이닉스의 무기한 선물 계약이 주말 사이 2.5% 넘게 하락했다.
나스닥 100 지수가 지난 6월 최고점 대비 4% 이상 하락하고 미 반도체 지수가 14% 슬럼프를 겪은 상황에서, AI 속도 조절론은 추가 악재가 분명하다. 높은 밸류에이션을 유지하던 기술주들에 대한 수익성 검증이 한층 엄격해질 전망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속도 조절이 단기적인 약세 요인일 뿐, 장기적인 AI 투자 흐름 자체를 흔들지는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게리 탄(Gary Tan) 올스프링 글로벌 인베스트먼트(Allspring Global Investments)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단기적인 압박은 존재하겠지만, 장기적인 AI 트레이드를 이탈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AI 개발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설비 투자 ‘수익화’ 전환 계기… 기업 IPO 일정 차질 가능성
전문가들은 신규 기능 개발 속도가 다소 완화되는 것이 이미 대규모 투자로 구축된 인프라의 수익화(Monetization)를 도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빌리 렁(Billy Leung) 글로벌 X 매니지먼트(Global X Management) 투자 전략가는 “앤트로픽, 오픈AI, 그리고 일론 머스크 등 3명의 CEO가 속도 조절에 합의했다고 해서 칩, 전력, 인프라에 투입되는 자금이 실제로 바뀌지는 않으며, 오히려 개발 타임라인을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빌리 렁 투자 전략가는 “상업화와 도입이 계속 성장하는 동안 개발 속도가 약간 완화되면, 구축을 위해 돈을 쓰는 단계에서 이미 구축된 것에서 돈을 버는 수익화 단계로의 전환이 촉진된다”고 덧붙였다.
차루 차나나(Charu Chanana) 삭소 마켓(Saxo Markets) 수석 투자 전략가 역시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도입된다고 해서 컴퓨팅 파워와 AI 도입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차루 차나나 수석 투자 전략가는 “투자자들에게 책임감 있는 개발은 발전 속도가 다소 조절되더라도 AI 기회의 지속 가능성을 더 높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속도 조절 여파는 기업들의 상장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OpenAI) 최고경영자(CEO)는 포춘(Fortune)과의 인터뷰에서 “안전 문제가 대두되는 현시점에서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상장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히며 예정된 IPO 연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따라 앤트로픽을 포함해 수조 달러 규모로 평가받던 AI 기업들의 상장도 연쇄적으로 미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AI 스웜 탈출과 통제 불능 위험… 속도 조절 합의의 배경
이번 파장의 발화점이 된 개발 속도 조절 합의는 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통제 불능 위험과 실질적인 안전 사고 때문이다.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앤트로픽(Anthropic)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Elon Musk) 스페이스X(SpaceX)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CEO는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데 이례적인 동의를 표시했다.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스스로 성능을 개선하는 ‘재귀적 자기 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 능력이 인간의 통제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지난 7월 오픈AI 시험 환경에서 탈출한 1200개의 AI 에이전트 스웜이 소프트웨어 기업 허깅페이스(Hugging Face)를 해킹한 사건과, 5월 ‘젬스터퍼(GemStuffer)’ 사이버 보안 사건이 오픈AI 에이전트에 의해 자행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속도 조절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정렬 오류를 일으킨 AI 스웜이 6~12개월 내에 인터넷을 점령하거나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제 불능의 AI 개발 경쟁에 반발해 제이콥 콕슨(Jacob Coxon) 앤트로픽 연구원이 사직을 감행하는 등 업계 내부의 우려도 깊어졌다.
안전성 정렬과 독립적 제3자 검증 도입
기술적 통제를 위해 다리오 아모데이 CEO는 모델이 임계 능력에 도달하기 전 1~2년의 유예 시간을 벌어 정렬(alignment) 기술을 발전시키고, 독립적인 제3자 평가자에게 훈련 과정의 상시 검증 권한을 부여하자고 제안했다.
올트먼 CEO는 “독립 평가자에게 직원에 준하는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훌륭한 아이디어이며 오픈AI도 동일하게 시행하겠다”고 동의했다. 일론 머스크 CEO 역시 “다리오의 말이 맞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브래드 거스트너(Brad Gerstner) 알티미터 캐피탈(Altimeter Capital) 최고경영자(CEO)는 “AI 경쟁을 보호해야 하지만, 이번 결정은 속도와 자율 규제, 안전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