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서사는 서구 기독교 영향…동양 문화와 괴리
사회주의 체제, AI 통제 자신감…인터넷 검열 경험
미 기업들의 공포 조장, '중국 AI 기업 견제' 의심
[블록미디어 이정화 기자] “인공지능(AI) 종말론은 21세기판 프랑켄슈타인 같다. 동양 정서나 서사에 맞지 않는다.”
중국이 AI 속도조절론이나 종말론에 회의적인 것은 문화적, 사회적 체제가 서구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각) 주말판 특집 기사에서 “중국이 AI 위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에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를 쓴 릴리 궈(Lily Kuo) 기자는 대만 타이페이에 거주하는 중국 특파원이다.
중국이 AI 속도조절론에 회의적인 이유는 크게 문화적 배경, 강력한 국가 통제를 전제로 하는 사회주의 체제,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경쟁이라는 세 축으로 나눠볼 수 있다.
문화적 측면…서구의 ‘프랑켄슈타인 공포’가 동양에는 없다
NYT가 제시하는 첫 번째 이유는 AI를 바라보는 문화적 차이다. 서구의 AI 종말론에는 인간이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를 창조하고 결국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의해 파괴된다는 오래된 서사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성경의 종말론과도 맞닿아 있다. 신의 영역이 있고, 인간의 영역이 있다는 식이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인간이 신의 영역인 생명 창조에 도전하고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이런 서사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설명이다.
베이징의 AI 안전 컨설팅 업체 콘코디아의 팡량 AI 안전·거버넌스 책임자는 “중국에는 ‘천인합일(天人合一 하늘과 사람이 하나)’이라는 개념이 있다”며 “인간을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보는 관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를 포함한 모든 것은 자연에서 나온다”며 기술 역시 인간을 파괴하기 위해 등장한 외부의 힘이라기보다 인간과 함께 공존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서구에서 제기되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지능을 만들고 결국 그 지능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동일한 정서적 호소력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인터넷도 통제하는데 AI를 못 끄겠나”
두 번째는 중국의 정치·사회 체제다. 미국 AI 안전론의 핵심에는 AI가 어느 순간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가정이 있다. 그러나 NYT는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발상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이미 인터넷을 강력하게 통제해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도시 전체를 봉쇄하고 디지털 감시 시스템을 통해 수억명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국가 행정력을 보여줬다.
중국 기술을 연구하는 아프라 왕은 중국 정부가 필요하면 도시 전체의 전력망을 즉시 차단하고 사람들의 휴대전화까지 압수할 수 있을 정도로 물리적 세계에 강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컴퓨터 안에서 움직이는 AI를 인간이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실리콘밸리의 공포는 중국에서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실제로 중국은 AI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 AI 생성 콘텐츠에는 표시 의무가 있고 AI 모델은 공개하기 전에 당국에 등록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중국 당국은 최근 AI의 ‘재귀적 자기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과 극단적인 통제 상실 가능성도 공식적으로 경고하기 시작했다.
사이버 공격이나 생물무기 개발 등에 AI가 악용되는 위험에도 대비하고 있다. 즉 중국의 논리는 ‘AI는 안전하다’라기보다 ‘위험하면 국가가 통제하면 된다’는 쪽에 더 가깝다.
서방과의 경쟁… “AI 안전론은 중국을 늦추려는 공포 마케팅”
세 번째이자 현실적인 이유는 미중 AI 패권 경쟁이다. 중국에서는 미국 기업과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AI 속도조절론을 순수한 안전 논의가 아니라 중국의 기술 추격을 늦추기 위한 전략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NYT에 따르면 중국 언론에서는 미국 AI 기업들이 시장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 ‘공포 마케팅’을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칭화대에서 인간·컴퓨터 상호작용과 AI 안전을 연구했던 차이제는 중국 업계에서는 AI 실존적 위험에 관한 이야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AI가 매우 초기 단계에 있다고 본다”며 현재의 초점은 기회와 혁신에 있다고 설명했다.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불신을 키웠다. 아모데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보다 AI 기술에서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첨단 반도체와 AI 장비 접근을 추가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AI 안전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이런 발언이 역효과를 낸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이 한쪽에서는 “AI가 너무 위험하니 개발 속도를 늦추자”고 말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중국에는 첨단 AI 반도체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중국 입장에서는 AI 안전론을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 위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사이버보안 기업인 저우훙이는 오히려 “AI로 AI를 물리쳐라”고 주장했다. 상대가 AI로 공격하면 AI로 방어하고, 상대가 AI 에이전트 군집을 투입하면 보안 에이전트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중국에서 AI 안전 문제는 ‘개발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보다 ‘위험한 AI에 대응할 능력을 누가 더 빨리 확보할 것인가’라는 기술 경쟁의 문제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는 게 NYT 보도의 핵심이다.
종합하면 중국이 AI 속도조절론에 회의적인 이유는 세 가지가 겹친 결과다. 문화적으로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기술에 의해 파괴된다는 서구식 ‘프랑켄슈타인 서사’에 대한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국가 통제력을 통해 기술 위험 역시 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지정학적으로는 미국의 AI 안전론을 중국의 추격을 늦추려는 산업·안보 전략으로 의심한다.
중국 당국과 연구자들도 AI의 자기복제, 사이버 공격, 생물무기 악용과 극단적인 통제 상실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차이는 위험의 존재보다는 대응 방식에 있다. 미국에서 나오는 ‘속도를 늦추자’는 주장보다 ‘국가가 통제하고, 규제하면서, 동시에 기술과 방어 능력을 발전시키자’는 접근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