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시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금리 인상이 최근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을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소비 과열보다는 관세와 에너지 가격 상승 등 공급 측 요인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역시 높은 금리에도 좀처럼 둔화하지 않고 있다.

결국 연준이 금리를 올릴 경우 물가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보다 주택과 소비 등 금리에 민감한 부문에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0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은 연준이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약 70% 반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11일 발표되는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에 따르면 8월 CPI는 전월 대비 0.4% 오르고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0.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유가가 밀어올린 물가… 금리 인상 효과는 제한적

문제는 최근 미국의 물가를 끌어올린 요인 상당수가 금리에 민감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다. 지난 2월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 상승은 휘발유와 운송비 등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의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도 공급 측 물가 압력을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대규모 관세 정책을 발표한 이후 주요 교역국을 대상으로 무역장벽을 확대했다. 수입품 가격 상승과 공급 감소가 미국 내 상품 가격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통상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대출 비용을 높이고 소비와 투자를 억제하는 방식으로 물가를 잡는다. 그러나 금리를 올린다고 국제유가가 직접 내려가거나 관세로 높아진 수입품 가격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스테파니 로스 울프리서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추세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의 핵심 요인은 이란 전쟁과 관세 그리고 반도체 부족”이라며 “연준이 한두 차례 금리를 올리더라도 이러한 환경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연준 내부에서는 관세의 물가 충격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관세의 가격 효과는 대부분 인플레이션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높은 에너지 가격이 광범위한 상품과 서비스 가격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현재까지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주택은 얼어붙는데 AI 투자는 계속… 약해진 ‘금리 약발’

AI 투자 붐도 연준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높은 금리가 주택시장에는 강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AI 인프라 투자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거용 건설 고용은 높은 주택 가격과 금리 부담으로 2024년 9월 이후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전체 건설업 고용은 지난 8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주거 전문 건설과 엔지니어링 부문의 고용 증가가 주택 부문의 부진을 상쇄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확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JP모건체이스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자본 규모가 최대 5조5000억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형 기술기업들의 투자 여력도 금리 인상의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바클레이스 분석에 따르면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영업현금흐름의 90% 이상을 AI 인프라에 투입하고 있다. 외부 차입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만큼 데이터센터의 조달 금리가 0.5~0.75%포인트 높아져도 투자 계획을 바꿀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아제이 라자디악샤 바클레이스 글로벌 리서치 회장은 “경제가 과거 금리 인상기에 비해 금리에 훨씬 덜 민감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소비자가 금리 부담 떠안을 수도

연준이 금리를 추가로 올릴 경우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을 곳은 소비와 주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시장금리는 연준의 실제 금리 인상에 앞서 움직이고 있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최근 2023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지난주 6.85%까지 오르며 1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질소득 증가세가 정체된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은 자동차와 가전 여행 등 가계의 선택적 소비를 압박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호지 나티시스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이 “재량적 소비에 하방 압력을 가하면서 경제성장률을 소폭 둔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준으로서는 어려운 선택이다. 고용시장이 아직 견조한 상황에서 물가 안정이라는 목표를 외면하기 어렵지만 금리를 올려도 관세와 유가 AI 투자 같은 현재의 인플레이션 요인을 직접 억제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이미 높은 대출금리에 노출된 가계와 주택시장이 추가 부담을 떠안을 가능성이 있다.

크리스토퍼 호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입증 책임은 물가 지표에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확실하게 진전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연준은 다음 주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