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이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공개매수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며 최윤범 회장 등 이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800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패소했다. 법원은 당시 이사회의 공개매수 결정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았으며, 자사주 취득 재원 사용도 법령이나 정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부장판사 김석범)는 영풍이 최 회장 등 고려아연 이사 10명을 상대로 낸 주주대표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주주대표소송은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묻는 절차로, 승소할 경우 배상금은 주주가 아닌 회사에 귀속된다.

소송은 2024년 영풍·MBK파트너스와 최 회장 측의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비롯됐다. 영풍·MBK가 같은 해 9월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서자 고려아연 이사회는 그해 10월 이에 맞서는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결의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주당 89만원에 자사주를 취득했다.

영풍은 이 결정이 회사의 이익보다 최 회장 등 경영진의 지위 보전을 위한 것이며, 높은 가격에 자사주를 사들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2024년 11월 이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주주총회 결의로 적립한 특정 목적의 임의준비금을 이사회 결의만으로 공개매수에 사용한 것도 상법과 정관에 위반된다는 주장을 폈다.

재판부는 이사들의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사가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충분히 수집·검토하고 회사의 최대 이익에 부합한다고 합리적으로 믿어 경영 판단을 내렸으며, 그 내용이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다면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개매수도 이사들이 영풍 측 공개매수를 회사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외부 법률자문과 관련 가처분 결정을 검토하고, 일정 비율의 할증 가격과 자금조달 방안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봤다. 법령상 절차와 제한을 위반하지 않았고 판단도 현저히 불합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의준비금 사용에 관한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자기주식 취득 한도 규정이 회계상 취득 가능한 총액을 제한할 뿐, 자금의 재원 항목만으로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규정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특정 목적 임의준비금을 중간배당 재원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정관 역시 자기주식 취득에 유추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MBK와 영풍은 ‘적대적 M&A’를 위해 당사의 정상적 경영 활동을 방해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묻지마 식’ 소송 남발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