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정윤재 에디터] 한국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은 과세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반 이상은 과세 도입에 동의했다. 그러나 현행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은 23.5%에 그쳤다. 투자자들이 요구한 것은 과세 여부가 아니라 세율과 공제 기준, 손익통산, 정책 신뢰를 포함한 정확한 제도 설계였다.

블록미디어가 실시한 설문은 한국 디지털자산 시장이 이제 ‘과세 찬반’ 단계를 넘어 ‘어떻게 과세할 것인가’를 묻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블록미디어가 7월31일 공개한 ‘2026년 6월 한국 디지털자산 리테일 투자자 리포트’는 국내 활성 투자자 63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다. 응답자의 84.1%가 현재 디지털자산에 투자하고 있으며, 일반 대중보다 실제 시장 참여자의 심리와 행동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과세 찬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과세할 것인가’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과세에 대한 태도다. 응답자의 51.1%는 디지털자산 과세가 필요하거나 세율과 공제 기준을 조정한 뒤 도입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과세 반대 또는 추가 유예 의견은 42.5%였다. 숫자만 보면 찬성이 우세하지만, 세부 응답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응답은 ‘세율과 공제 기준을 조정한 뒤 도입’으로 27.6%였다. 반면 현행안 그대로 과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응답은 23.5%에 머물렀다. 이는 투자자들이 세금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행 제도의 완성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응답도 확인됐다. 전체 응답자의 76.5%는 현재 디지털자산 과세 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핵심 쟁점은 과세 도입 여부보다 공제 한도와 세율, 손익통산 방식, 신고 절차 등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였다.

특히 현재 투자자 집단만 놓고 보면 찬반은 더욱 팽팽해졌다. 과세 도입 또는 조정 후 도입 의견은 50.6%, 반대 또는 추가 유예는 45.9%였다. 실제 세금을 납부할 가능성이 높은 투자자일수록 단순한 찬반보다 제도의 공정성과 실효성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과세 인식이 정부 정책 평가와 강하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의 과세 반대·유예 비율은 8.1%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에서는 이 비율이 68.1%까지 높아졌고,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 집단에서는 80.9%에 달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단순히 세금을 내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제도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 신뢰하지 못할수록 과세에 대한 거부감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령별 결과도 흥미롭다. 과세 반대 또는 유예 비율은 20대가 51.2%, 30대는 38.9%, 40대 42.4%, 50대 44.8%, 60대 이상은 52.2%였다. 일반적으로 젊은 투자자들이 과세에 가장 반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60대 이상에서도 반대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를 단순한 세대 갈등이 아니라 투자 경험과 정책 신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했다.

조사 당시 현재 투자자의 67.1%는 손실 구간에 있었다. 50% 이상 손실이 18.3%, 25~50% 손실이 19.1%, 25% 미만 손실이 29.7%였다. 수익을 기록한 투자자는 32.9%에 불과했다.

보유 자산 규모 역시 대다수가 크지 않았다. 현재 투자자의 63%는 디지털자산 보유액이 1000만원 이하였으며, 1억원 이상 보유자는 10.8%였다. 투자자의 절반 이상은 전체 자산 가운데 디지털자산 비중을 10% 미만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실이 곧 시장 이탈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50% 이상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의 91.2%는 시장이 회복되면 디지털자산 비중을 다시 늘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이번 조사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투자자들은 위험 노출은 줄였지만 디지털자산 시장 자체에 대한 장기 신뢰는 유지하고 있었다. 과세 역시 이런 맥락에서 받아들여졌다. 제도가 합리적이라면 수용할 수 있지만, 지금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코인으로 인한 손실이 반도체 FOMO 야기

조사 결과는 투자자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다른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응답자의 73.0%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6월 중 주식 비중을 늘렸다는 응답은 55.7%에 달했다. 국내 증시 활성화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디지털자산 시장 부진과 높은 변동성 역시 자금 이동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혔다.

특히 반도체 랠리의 영향은 뚜렷했다. 응답자의 75.4%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상승을 보며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소외 공포)’를 느꼈다고 답했다. 실제 반도체 주식 비중을 늘렸다는 응답도 27.0%, 확대를 고민 중이라는 응답도 23.6%였다.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자산 손실과 반도체 투자 사이의 관계다. 디지털자산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의 84.8%가 반도체 FOMO를 경험했고, 실제 주식 비중을 늘린 비율도 39.6%에 달했다. 수익자의 비율(11.9%)보다 세 배 이상 높았다.

그러나 이를 ‘코인에서 주식으로의 대이동’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조사 결과는 오히려 반대 방향을 시사한다.

시장 회복 시 디지털자산 비중을 다시 늘리겠다는 응답은 81.5%였다. 특히 주식 비중을 가장 크게 늘린 집단의 복귀 의향은 92.9%, 반도체 FOMO로 실제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의 복귀 의향도 95.5%에 달했다.

이는 주식 투자가 디지털자산 시장의 대체재가 아니라 일시적인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강한 자산으로 이동했지만, 디지털자산 시장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현재 투자자의 77.2%는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과거 경험까지 포함하면 이용 경험은 88.2%에 달했다. 이미 스테이블코인은 일부 투자자의 선택이 아니라 대부분 투자자가 사용하는 기본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보유 이유도 과거와 달라졌다. 가장 많은 응답은 달러 가치 상승 기대(53.2%)였고, 비교적 안전한 자산이라는 인식(32.8%), 해외 거래소 투자(30.3%), 예치 서비스와 결제 목적이 뒤를 이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히 거래소에서 다른 코인을 사고팔기 위한 중간 자산을 넘어 위험관리와 달러 노출, 해외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스테이블코인을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 보유한 투자자들의 손실률은 다른 집단보다 크게 낮았다. 보고서는 표본이 많지 않아 인과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적어도 약세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대기 자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약세 전망 우세 속 관심은 AI와 RWA로 이동

시장 전망은 엇갈렸다. 2026년 디지털자산 시장을 긍정적으로 본 응답자는 41.0%, 부정적으로 본 응답자는 30.8%였다. 낙관론은 다소 약해졌지만 비관론이 시장을 지배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투자 전략은 여전히 장기 중심이었다. 응답자의 79.9%는 중장기 보유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관심 분야 역시 단기 유행보다 구조적 성장 분야에 집중됐다. 현재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AI가 59.0%로 가장 높았고, RWA(실물자산 토큰화) 32.7%, 스테이블코인 32.4%가 뒤를 이었다. 2026년 가장 유망한 분야를 묻는 질문에서도 AI와 스테이블코인, RWA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정보를 얻는 방식도 투자 경험에 따라 달랐다. 신규 투자자는 뉴스를 통해 비트코인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장기 투자자는 커뮤니티와 자체 리서치를 활용하며 알트코인과 다양한 온체인 생태계로 관심을 넓혀가는 모습이 나타났다.

또 현재 또는 과거 경험을 포함하면 에어드랍 참여율은 75.7%, DEX 이용 경험은 64.5%, 선물거래 경험은 47.7%에 달했다. 이번 조사 표본이 일반 대중이 아닌 고관여 투자자 중심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리포트는 한국 디지털자산 투자자가 어떤 자산을 사고파는지보다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응답자의 67.1%는 손실 상태였다. 절반 이상은 주식 비중을 늘렸고, 반도체 랠리를 보며 FOMO도 경험했다. 그러나 시장 회복 시 다시 디지털자산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응답은 81.5%에 달했다. 자금은 움직였지만 투자자들의 장기적인 기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세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다. 투자자들은 과세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정부가 얼마나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고, 손익통산과 공제 기준, 신고 체계를 얼마나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과세 수용도는 높아졌고, 신뢰가 낮아질수록 반대 의견은 급격히 증가했다. 이는 향후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정책의 성패가 세율보다 제도의 신뢰성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번 조사는 한국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이 “세금을 낼 것인가”보다 “납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를 정부에 묻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장은 여전히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그 회복의 속도를 결정할 변수 가운데 하나는 가격이 아니라 정책에 대한 신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