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심영재 특파원] 뉴욕증시가 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일제히 반등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에 부합하거나 일부 항목에서 예상치를 웃돌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투자자들은 중동 긴장으로 급등했던 국제유가가 이날 큰 폭으로 되돌림을 보인 점에 주목했다. 주요 지수는 나란히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끊었다.
CNBC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각)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09.19포인트(0.98%) 오른 5만2573.30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65.28포인트(0.86%) 상승한 7656.98을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251.31포인트(0.96%) 오른 2만6333.00에 마감됐다.
중소형주를 대표하는 러셀2000 ETF도 1.17포인트(0.41%) 상승한 288.87을 기록했다. 다우와 S&P500 나스닥이 1%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중소형주의 반등 폭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유가 2%대 하락…인플레이션 부담 완화에 투자심리 회복
이날 증시 반등의 직접적인 동력은 국제유가 하락이었다.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로 이번 주 급등했던 원유 가격이 2% 넘게 떨어지면서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완화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이날 2.4% 하락한 배럴당 100.0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브렌트유 선물도 2.8% 떨어진 배럴당 104.61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주간 기준으로 보면 국제유가는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WTI는 이번 주 약 10% 상승했고, 브렌트유 역시 8.6% 뛰었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원유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유가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최근의 에너지 가격 상승이 미국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시장의 경계 요인으로 남았다. 미국의 8월 CPI는 전월 대비 0.4% 상승했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3.4% 올랐다. 두 수치 모두 시장 예상에 부합했다.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보다 0.3% 상승해 시장 전망을 소폭 웃돌았다. 물가 압력이 충분히 진정되지 않았다는 신호가 확인되면서 연준의 추가 긴축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CME 페드워치 0.25%포인트 인상 확률 85.6%…증시는 일단 ‘유가 하락’에 무게
채권시장에서도 이러한 전망이 반영됐다. CPI 발표 이후 미 국채 금리는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지만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물 국채 금리는 장중 2024년 7월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라섰다.
CME그룹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이 반영한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은 85.6%까지 높아졌다. 금리 인상 여부 자체보다 이번 긴축 사이클에서 연준이 몇 차례 추가 인상에 나설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시마 샤 프린시펄자산운용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연준을 둘러싼 논쟁이 금리를 올릴지 여부에서 이번 사이클에서 몇 차례 인상이 필요한지를 묻는 단계로 빠르게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한 차례 인상에 그치기보다는 물가 안정을 다시 확립하기 위해 추가적인 긴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날 주식시장은 금리 인상 우려보다 유가 하락과 최근 낙폭에 따른 반발 매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앞서 다우지수와 S&P500지수 나스닥지수는 모두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특히 다우지수의 4거래일 연속 하락은 지난 4월 말 이후 가장 긴 연속 하락이었다.
장 초반부터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상승 과정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장중 차익 실현과 금리 부담이 맞물리며 지수의 상승폭이 일부 축소되기도 했다. 다만 오후에도 주요 지수가 플러스권을 지키면서 결국 4거래일 연속 하락 흐름에서 벗어났다.
S&P500 11개 업종 중 10개 상승…HPE·델 11% 안팎 급등
종목과 업종별로도 위험선호 회복이 비교적 폭넓게 나타났다. S&P500의 11개 업종 가운데 10개 업종이 상승세를 나타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업종은 장중 1.9% 상승하며 지수 반등을 주도했다.
기술주 가운데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는 장중 약 11% 급등하며 S&P500 종목 중 가장 두드러진 상승세를 나타냈다. 델테크놀로지스 역시 약 11% 뛰었다. RBC가 델에 대한 분석을 개시하면서 ‘아웃퍼폼’ 의견을 제시한 것이 주가 상승의 촉매로 작용했다.
반면 씨게이트테크놀로지는 3.4% 넘게 떨어지며 S&P500과 나스닥에서 부진한 종목으로 꼽혔다. 기술주 전반이 상승했지만 개별 기업별 주가 차별화도 뚜렷하게 나타난 셈이다.
다우지수에서는 시스코시스템즈가 장중 4.1% 오르며 상승률 기준으로 가장 강한 흐름을 보였다. 캐터필러는 다우지수 상승폭 가운데 약 95포인트를 기여하며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반면 유나이티드헬스와 암젠 존슨앤드존슨은 하락하면서 지수의 추가 상승을 제한했다.
이날 뉴욕증시는 결국 ‘물가와 금리’라는 부담과 ‘유가 하락과 낙폭 회복’이라는 재료가 맞선 끝에 후자에 무게를 둔 모습이었다. CPI가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춰주지는 못했지만 국제유가가 급등세에서 한발 물러서자 최근 나흘간 이어진 매도세도 진정됐다.
다만 WTI가 주간 기준 약 10% 오른 상태고 다음 주 금리 인상 가능성이 85.6%까지 반영된 만큼 이날 반등만으로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에 대한 부담이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 움직임과 다음 주 연준의 금리 결정 및 향후 긴축 경로가 뉴욕증시의 다음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