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인공지능(AI) 랠리를 재개하며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코스피는 나홀로 제자리걸음을 하며 크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미국과 대만 증시가 AI 가속기와 첨단 패키징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인 반면 코스피는 시가총액 상위 반도체 대형주의 부진 속에 좀처럼 상승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높은 메모리 반도체 의존도와 가파른 원화 절상, 수급 공백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국내 증시가 주요국 증시와 디커플링(탈동조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전날 2% 넘게 조정을 받으며 8월 이후 상승률이 0.46%에 그치는 등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기록한 고점과 비교하면 27%가량 낮은 수준이다. 미국 나스닥지수와 대만 자취엔지수가 이달 들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가파른 반등세를 보인 것과 대조되는 흐름이다.
최근 주요국 증시 랠리는 빅테크 기업들의 AI 설비투자(CAPEX) 지속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 견인했다. 지난달 미국이 금리를 올린 이후 국채금리가 급등했지만 설비투자 축소 신호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주요국 기술주를 중심으로 안도 랠리가 이어졌다. 여기에 이달 들어 연준 인사들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발언과 예상치를 밑도는 9월 고용지표에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약화되면서 주가를 더욱 밀어올렸다.
미국 등 주요국 증시와 코스피 간 탈동조화 양상도 별도 악재보다 고금리 환경 속에서 벌어진 업종별 편중 확대가 투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미 증시 역시 내부를 들여다보면 실질적인 온기가 AI 인프라 관련 소수 대형주에 집중돼 있다. 반면 금리 민감도가 높은 경기 순환형 업종과 중소형주는 소외되면서 소수 업종이 랠리를 지탱하는 상황이다. 중소형주 위주의 러셀2000지수는 장기 국채금리 상승 우려가 재부각된 8월 중순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고점 대비 9%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벤 스나이더 골드만삭스 전략가는 지난달 말 보고서를 통해 “AI 관련 소수 주도주의 독주가 지수를 지탱하고 있지만 시장폭(Market Breadth)은 닷컴 버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위축됐다”며 “S&P500 편입 종목 중 중위값에 해당하는 업종 주가가 52주 신고가 대비 16%나 밑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반도체 업종 내에서도 전통적인 사이클 영향이 큰 기업들은 반등세가 제한되는 모양새다. 마이크론은 6월 고점 대비 주가가 15% 가까이 밀려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통신 칩 등 전통 교체 주기에 영향을 받는 브로드컴 역시 고점 대비 25%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
이 같은 쏠림 장세가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국내 증시에도 직격탄이 됐다. 메모리 업종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마진 확대로 실적 추정치가 상향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일반 D램은 피크아웃 우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파른 원화 강세와 외국인 수급 공백도 지수 하방 압력을 가중시켰다. 7월 이후 대만달러가 0.19% 약세를 보이고 엔화가 2.74% 절상에 그치는 동안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무려 15.70% 급등하며 수출 대형주의 실적 눈높이를 낮췄다. 이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거센 매도세를 이어가면서 최근 한 달 새 코스피에서 28조6872억원을 팔아치웠다. 이달 들어서도 외국인 자금 이탈이 지속되면서 5거래일간 순매도 규모만 6조4459억원을 기록했다.
황산해 LS증권 연구원은 “미국과 국내 증시 간 극명한 온도차는 AI 사이클의 주도권이 메모리에서 맞춤형 반도체, 소부장, 보안 소프트웨어 등으로 이동하며 국내 증시가 소외된 결과”라면서 “환율과 유가, 물류 부담, 고금리가 글로벌 수요를 누르며 국내 수출주에 부담이 되는 환경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