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기계음이 끊임 없이 울리는 공장 한복판에서도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스팟’은 듣습니다.”
지난달 30일 부산 강서구 화전산업단지 내 LS일렉트릭 부산사업장. 초고압 변압기 제조의 핵심 공정인 진공건조로의 비좁은 통로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팟(Spot)’이 유유히 누비고 있었다.
LS일렉트릭은 지난 7월부터 로봇시스템통합(SI) 전문사인 현대오토에버와 협업해 스팟 2대를 시범 운영한 데 이어 지난달부터 현장에 정식 투입했다. 일명 ‘로봇 개’로 불리는 스팟은 작업자가 귀를 틀어막을 정도의 고음 속에서도 음향 카메라인 ‘귀’를 쫑긋 세운 채 설비 상태를 점검했다.
사람의 피부로는 고온이 그대로 느껴지는 고위험 시설 앞에서도 스팟은 흔들림이 없었다.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파이프라인 등 주요 설비를 빠짐없이 촬영했다. 과거 작업자가 안전장구를 착용하고 적외선 온도계로 수차례 반복 측정해야 했던 번거로운 작업이 단 한 번의 촬영으로 시각화됐다. 고온일수록 붉게 표시되는 모니터 화면을 터치하자 해당 지점의 정확한 온도가 즉시 표시됐다.
진공건조로가 한 번 고장나면 일주일 가량 초고압 변압기 제조 공정이 멈춘다. 그 경우 손해액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스팟이 1년에 한 건만이라도 이 설비의 예지보전에 성공하면, 1대당 5억원 가량 투입된 스팟 비용은 곧장 상쇄되는 셈이다.
스팟의 역할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요 지점에 설치된 아날로그 게이지 수치를 영상으로 읽어냈고, 공장 내 온도·습도·진동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통신 모듈을 통해 공장 문을 스스로 열고 닫으며, 라이다 시스템으로 작업자나 장애물을 알아서 피해 갔다.
미국발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와 전력망 투자 확대에 따라 초고압 변압기를 주로 생산하는 LS일렉트릭 부산사업장은 최근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람 4명이 할 일을 혼자 척척해 해내는 스팟의 존재감을 현장에서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스팟이 공장 내 점검하는 곳은 진공건조로와 시험설비 시설 등 300여 곳에 달한다. 공장의 생산 현장 전반도 자율 순찰하면서 인공지능 기반 비전 검사(AIVI)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사각지대의 환경 데이터까지 확보 중이다.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즉각적인 대응도 가능하다. 스팟은 24시간 멈추지 않고 순찰할 수 있기 때문에 새벽 시간 언제라도 설비 온도가 기준치를 초과하면 사내 통합 네트워크를 통해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알림 메일이 발송된다. 메일을 받은 현장 작업자가 즉시 정밀 진단에 들어가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는 구조다.
LS일렉트릭은 앞으로 스팟이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 환경과 제품 품질 간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최적의 생산 조건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기반으로 AI 분석 모델을 구축하고 향후 국내외 주요 생산기지로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게 LS일렉트릭의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전 사업장에 보행로봇 기반 스마트 순찰 체계를 구축하고 생산과 품질, 안전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디지털 제조 플랫폼을 구현할 방침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로봇 도입에 따른 인력 감축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허영무 LS일렉트릭 부산공장장은 “스팟 도입으로 종전의 순찰 인력은 다른 업무로 배치했고 인력 감소는 없다”면서 “2028년까지 수출 물량이 이미 꽉 차 있어 오히려 채용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I와 로봇 기술을 제조 현장에 적극 접목해 전 사업장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수준의 스마트 제조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