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방위산업 기업들의 기술 자립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국산 전투기 개발·양산에 이어 항공무장 국산화가 추진되고, 해양에서는 함정 수출을 넘어 현지 공동건조와 미 해군 유지·보수·정비(MRO)로 사업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우주에서는 위성 제작을 넘어 발사체와 위성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장의 승부가 화력 만큼이나 인공지능(AI)를 이용한 첨단 운용 능력에 좌우되면서 무기체계의 지능화와 함께 사이버 보안의 중요성도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방산에 필요한 핵심광물과 소재 공급망까지 국내 기업들이 확보하면서 K방산은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기술·생산·정비·소재를 아우르는 종합 산업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항공·해양·우주·AI·소재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변화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과거 한국 방산의 목표가 우리 군에 필요한 무기를 우리 기술로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수출 이후 현지 생산과 정비, 후속지원까지 장기간 사업을 이어가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완제품 수출은 부품 수출로 연결되고, 이는 국내 협력업체들의 동반 해외 진출로 이어진다. 방산이 반도체·조선·자동차·전자·소재 등 기존 제조업의 경쟁력을 흡수하면서 산업 생태계 자체가 커지는 구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9월 재사용 발사체 시연체 총조립에 착수하고 2028년 수직 이착륙 비행시험을 계획하고 있다. 누리호 4~6호기 제작을 주관하며 축적한 발사체 기술을 민간 우주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국가 연구개발 중심이었던 우주산업에서 민간 기업이 발사체 개발과 상업화의 주체로 올라서는 ‘뉴스페이스’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다.

AI로 인한 전장의 판도도 바뀌고 있다. 이제 무기의 물리적 성능뿐 아니라 AI와 사이버보안의 신뢰성까지 수출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LIG D&A는 AI 기반 ‘지능형 의사결정 지원체계’를 2029년까지 개발하고, 서로 다른 무인체계를 하나로 연결해 통제하는 군집 연결 기술을 시연했다. 현대로템도 AI와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무인차량을 개발하며 유·무인 복합체계(MUM-T)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K2 전차의 경쟁력은 디지털 기반 설계에서 비롯된 확장성이다. 수요국 요구에 맞춰 성능을 강화할 수 있으며 120㎜ 활강포와 자동장전장치, 유기압 현수장치, 피아식별장치, 자동 표적추적 기능 등을 갖췄다. 이를 이용해 능동방호체계도 적용할 수 있어 다양한 전장 환경에 대응할 수 있다.

KF-21 개발 성공의 배경에는 국내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항공산업 생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수십만 개의 부품과 소재, 고도의 항전장비가 결합되는 항공기는 수백 개 협력업체의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개발하기 어렵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는 KT-1, T-50, FA-50, 수리온 등 40년간 국산 항공기 플랫폼을 개발하며 체계종합 기술을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정밀가공 등 과거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분야에서도 국내 협력업체들의 기술 자립도가 높아졌다.

전투기는 플랫폼 자체뿐 아니라 어떤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지가 수출 경쟁력을 결정한다. KF-21 양산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업계의 관심도 국산 항공무장 확보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유럽산을 대체할 국산 공대공 미사일 개발 사업의 윤곽도 드러났다. 핵심 기술로 꼽힌 추진기관 분야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우세했고, 체계종합 분야에서는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가 앞섰다. 1조9000억원이 투입되는 차세대 공대공 미사일 사업을 양대 방산 업체가 나란히 맡아 개발하는 모양새다. 지난 2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장거리 유도탄 체계개발 사업을 주관하는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제안서 평가 결과를 각 업체에 통보했다.

해양 방산에서는 수출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1976년 울산함 연구개발을 시작으로 국내 함정산업을 이끌어왔고, 2007년에는 세계 세 번째로 7000t급 이지스 구축함의 자체 설계와 건조에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해외에서 총 20척을 수주했고 이 가운데 10척을 인도했다.

필리핀은 대표적인 수출 거점이다. 2016년 호위함 2척을 시작으로 총 12척을 수주했고, 올해 1월에는 원해경비함 1번함을 당초 납기보다 약 5개월 앞당겨 인도했다. 앞서 인도한 5척도 모두 조기 인도하면서 성능과 가격뿐 아니라 납기 경쟁력까지 입증했다.

수출 방식도 완제품 인도를 넘어 현지 생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페루에서는 현지 시마조선소와 신형 잠수함 기본설계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8월에는 공동 건조한 상륙지원함 1번함 ‘침보테함’을 진수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6000t급 수출형 호위함 ‘HDF-6000’과 단계적 현지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헌팅턴 잉걸스와 협력해 안두릴과 무인함정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페루·필리핀·사우디아라비아·미국을 잇는 수출 거점을 구축하면서 국내 조선소에서 함정을 만들어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설계·건조·현지 생산·후속지원으로 이어지는 ‘환태평양 벨트’를 만드는 전략이다.

한편, 한화는 필리조선소를 핵심 거점으로 삼아 50억달러(약 6조8000억원)를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현재 여난 1~1.5척 수준인 건조 능력을 20척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또 도크 2기와 안벽 3기 추가 확보, 39만6700제곱미터(㎡)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 신설 등도 추진한다.

함정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은 MRO다. HJ중공업은 1974년 국내 최초 해양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50여 년간 1300여 척의 함정과 경비함, 군수지원체계를 건조·정비해왔다. 독도함과 마라도함, 공기부양식 고속상륙정(LSF-Ⅱ)을 건조했고 창정비와 성능개량을 통해 함정의 전 수명주기에 걸친 사업 역량도 갖췄다.

이 역량을 미 해군으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군수지원함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MRO를 처음 수주한 데 이어 올해 1월 영도조선소에서 정비에 착수했다. 같은 달 미 해군 함정정비협약(MSRA)도 체결하면서 향후 5년간 미 해군 함정 MRO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확보했다.

함정은 수십 년간 운용되는 만큼 정비와 성능개량은 반복적인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 방산 수출의 무게중심이 ‘얼마나 많이 파느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사업을 이어가느냐’로 이동하는 셈이다.

첨단 무기를 직접 만들더라도 소재와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기술 자립은 완성되지 않는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지정학적 갈등이나 수출규제만으로도 생산 일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제련 기술을 기반으로 전략 소재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온산제련소에서 생산한 안티모니를 미국에 수출하며 방산·군사전자장비·항공우주 소재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다. 반도체와 광통신 등에 사용되는 게르마늄 공장 신설도 추진해 2028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테네시주에서는 핵심광물 11종을 포함한 비철금속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하는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추진한다. 국내 생산·수출과 미국 현지 투자를 연결해 한미 경제안보 협력의 기반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K방산은 기술 자립에서 출발했지만 무기 수출을 넘어 우주와 AI, 소재 공급망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한국 산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