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미디어 양원모 기자] 두바이의 밤은 언제나 화려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야경과 도로를 달리는 슈퍼카, 영화 속 저택을 연상시키는 집까지.
러시아 출신 디지털자산 사업가 로만 노박과 아내 안나의 소셜미디어 속 삶은 흠결 하나 없어 보였다. 고급 차량, 유명 여행지에서의 호화로운 일상은 성공한 신흥 부자의 전형이었다.
그러던 2025년 10월2일. 두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지막 목적지는 두바이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오만 국경 인근의 ‘하타’였다.
부부는 실종 전 주변에 “투자자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건 평범한 투자자가 아니었다.
사건 한 달 뒤 검거된 용의자들
사건의 전모는 한 달 뒤 러시아에서 용의자들이 붙잡히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사당국은 같은 해 11월 콘스탄틴 샤흐트, 유리 샤리포프, 블라디미르 달레킨을 노박 부부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범행에 필요한 차량, 장소 등을 마련한 혐의를 받는 조력자들도 붙잡혔다.
달레킨은 경찰 조사에서 일당이 노박을 추적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를 세 차례 찾았다고 진술했다. 두 번은 노박의 거주지 및 동선을 살피기 위해서였고, 한 번은 범행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태국부터 UAE까지…누가 부부에게 범행을 지시했나
수사당국에 따르면 사건 당일 개인 운전기사는 노박 부부를 하타의 호수 인근에 내려줬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일당의 차량으로 갈아탄 뒤 일당이 미리 섭외한 빌라로 이동했다.
일당은 범행 전 빌라 입구에 일부러 비싼 구두를 가져다놓기도 했다. ‘재력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를 줘 부부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친절한 투자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일당은 빌라로 들어간 뒤 돌변했다. 부부에게 지갑 접근 정보를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부부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사막에 버렸다.
일당은 노박 부부가 UAE에 정착하기 전인 태국에 있을 때부터 노박을 노린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노박을 살해한 뒤 바다에서 발생한 사고로 위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은 수사 과정에서 배후의 존재를 포착했다. 누군가 세 사람에게 UAE를 찾을 때마다 1만달러를 지급했고, 주요 피의자 가운데 한 명인 콘스탄틴의 계좌에서는 50만달러(약 6억7560만원)라는 거액이 압수됐기 때문. 콘스탄틴은 형사 출신이었다.
범행을 지시한 인물이 누구인지는 2026년 9월 현재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한편, 사건이 알려진 뒤 온라인에서는 노박의 과거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는 2020년 러시아에서 디지털자산 사기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었다. 디지털자산 범죄 전과자가 한순간 범죄 피해자로 뒤바뀐 셈이었다.
“배후 인물, 결코 안심할 수 없을 것”
노박 부부 사건에서 범인들이 노린 선 거래소 서버도, 블록체인의 기술적 취약점도 아니었다. 바로 ‘사람’이었다.
범인들은 투자 미팅을 미끼로 노박 부부를 외딴 장소로 끌어낸 뒤, 물리적 강압을 통해 디지털자산에 접근하려 했다. 업계에서 흔히 ‘렌치 공격’으로 불리는 방식이다. 시스템을 해킹하는 대신 자산 보유자를 위협해 개인키나 비밀번호 같은 접근 정보를 빼앗는 범죄를 뜻한다.
일당은 9월 기준 현지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책임자인 드미트리 이바노프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 상트페테르부르크지부 부국장은 “현재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고, 많은 정보를 수집한 상태”라며 “배후 인물이 결코 안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