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분기 주요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자금 상당수가 투자상품으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부터 증시 활황이 이어지며, 보수적 운용 성향이 짙은 시중은행 퇴직연금 가입자들 사이에서도 상장지수펀드(ETF) 등 위험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원리금비보장 상품 적립금은 42조37억원으로, 전체(87조4931억원)의 약 48.1%를 차지했다. 지난해 2분기 18조9400억원으로 전체(64조7666억원)의 약 29.3%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1년새 18.8%포인트 급증한 수치다.
원리금비보장 상품 적립금이 꾸준히 늘어나며 1년 만에 23조637억원 늘어난 반면, 원리금보장 상품 적립금은 오히려 3374억원 줄어들었다. 특히 신한·하나은행의 경우 올해 2분기 원리금비보장 상품 적립금이 각각 12조1044억원, 10조86억원으로 원리금보장 상품 적립금 액수(각각 11조3812억원, 9조6732억원)를 뛰어넘은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 DC형에서의 원리금비보장 상품 적립금도 10조4255억원에서 25조3701억원으로 급증했다. 비중으로 따지면 19%에서 37.7%로 18.7%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IRP와 거의 동일한 추세를 보였다.
은행권에서는 올해 6월 코스피가 9000선을 넘기는 등 증시 호황에 투자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포모’ 현상이 커지며 안정적 수익을 중요시하는 시중은행 퇴직연금 가입자들마저 공격적 투자 비중을 늘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에 따라 은행에서 증권사 퇴직연금으로 갈아타는 수요도 커졌다. 상대적으로 선택 가능한 상품군이 폭넓은데다 이용 편의성도 높기 때문이다. 최근 1년 동안 5대 시중은행의 DC·IRP 적립금이 119조3661억원에서 154조7343억원으로 약 29.6% 늘어났지만, 증권사 15곳의 경우 68조8649억원에서 121조1407억원으로 약 75.9% 급증하며 이를 훨씬 웃돌았다.
이에 시중은행들은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퇴직연금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민은행은 지난달 20일부터 은행권 중 처음으로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매도한 당일 다른 ETF를 매수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5월부터 ‘ETF CHECK’와 연계해 하나원큐 내에서 ETF의 실시간 호가와 시장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다만 3분기 들어 증시 조정장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원리금비보장 상품의 비중이 다시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극심해지자 증시에 머물던 자금이 다시 안정 자산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