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혁신의 범위가 진료실을 넘어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환자의 불편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의료진이 직접 제품 개발에 나서는가하면, 병원 경영에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적용해 효율성을 높이기도 한다. 서구 중심의 족부 데이터를 한국인 기준으로 다시 세워 기능성 인솔(신발 깔창)을 만든 푸른청년과 미용의료기관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 경영 자동화 솔루션을 내놓은 메디솔브AI가 대표적인 사례다.
푸른청년(대표 박은수)의 시작은 이 질문이었다. 정형외과 족부 전문의인 박 대표의 진료실에는 발바닥이 아파 오래 서 있기 힘들다는 환자, 아침에 첫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 조금만 걸어도 발이 쉽게 피로해진다는 환자 등이 줄을 이었다.
병원에서 맞추는 깔창은 정확도가 높지만 비용 부담이 컸다. 그렇다고 기성품을 권하자니 시중 제품은 종류와 가격이 제각각이라 추천하기가 어려웠다. 의학적 기준을 가진 기성 인솔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막상 창업을 결심했지만 박 대표에게는 또 다른 문제점들이 보였다. 기능성 인솔의 설계 기준이 되는 족부 데이터가 오랫동안 서구 자료에 의존해온 탓에 한국인의 발 형태와는 거리가 있었다. 푸른청년이 데이터부터 다시 만들기로 한 이유다.
박 대표는 최근 충남대학교병원 족부정형외과 강찬 교수, 건양대학교병원 족부정형외과 송재황 교수와 함께 한국 성인의 발과 발목 형태를 연구한 논문을 SCI급 국제 족부족관절 학술지 ‘풋 앤드 앵클 인터내셔널(Foot & Ankle International)’에 게재했다. 한국 성인의 발과 발목을 3차원 체중부하 CT로 분석해 유럽 데이터와 비교한 연구로, 한국인과 동아시아 인구의 발 형태에 맞는 기준값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했다.
임상 경험과 데이터는 제품 설계로 이어졌다. 첫 제품인 ‘닥터포디 커스텀 아치 인솔’에는 사용자가 발 모양과 아치 높이에 맞춰 조절하는 ‘셀프 아치 블럭 시스템’과 충격 흡수·복원력이 높은 포론 소재를 적용했다. 관련 기술은 지난해 한국특허정보원이 주관한 대한민국 우수특허대상에 선정됐다.
설계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아치의 정확한 위치다. 발바닥 안쪽을 아무 곳이나 밀어 올리면 오히려 이물감과 통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평발과 요족이라는 상반된 발 구조를 하나의 제품으로 다룰 수 있는 것도 3단계 블록 조절 방식 덕분이다. 무너진 아치는 지지하고, 떠 있는 공간은 채워 압력을 분산한다. 좌우 발의 차이는 단계 조절로 맞추는 구조다.
푸른청년은 올해 보급형 라인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압력 센서를 넣은 스마트 인솔로 발전시켜 풋 헬스케어 시스템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앞으로도 한국인 발 구조 맞춤 설계로 전 연령을 아우르는 발 건강 솔루션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메디솔브AI를 설립한 이종진 대표는 미용의료기관을 운영하며 직접 마주한 비효율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았다. 이 대표는 데이뷰의원과 세라미크의원 등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병원마다 상담과 고객 응대, 리뷰 관리, 마케팅 같은 지원 업무가 반복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가 지목한 가장 큰 문제는 ‘표준화 부재’였다. 같은 병원 안에서도 상담 실장마다 설명 방식과 시술 권유 수준이 다르고, 데스크 직원의 숙련도에 따라 고객 응대 품질이 달라졌다.
경력자가 퇴사하면 업무 노하우도 함께 빠져나갔다. 새 직원이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 다시 상당한 교육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다. 사람의 경험에 묶여 있던 병원 운영을 AI로 표준화하고 서비스의 편차를 상향 평준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창업의 출발점이었다.
메디솔브AI는 지난 3월 AI 기반 미용의료 플랫폼 ‘센츄리온’ 시리즈를 공개했다. 상담과 차팅, 리뷰·평판 관리, 마케팅, 재고 관리 등 진료 전후에 발생하는 병원 운영 업무를 AI로 지원하는 제품군이다. 진단이나 판독을 대신하는 의료 AI가 아니라 의료진과 직원이 반복적으로 처리하던 경영·행정 업무를 줄이는 ‘병원 운영 AI’에 초점을 맞췄다.
대표 제품인 ‘차티’는 상담 과정의 음성을 인식해 상담 내용을 자동으로 기록한다. 직원이 상담을 마친 뒤 기억에 의존해 내용을 다시 입력하는 수고를 줄이고, 환자의 관심 시술과 요구 사항 등이 누락되는 것도 방지한다. ‘링키’는 여러 경로로 들어오는 고객 문의와 상담을 통합해 응대 업무를 지원한다. 상담 직원 개인의 경험이나 순발력에 의존하던 답변을 일정한 기준으로 맞추는 역할을 한다.
리뷰 관리 제품인 ‘워치 리뷰’는 여러 플랫폼에 흩어진 병원 후기를 한 화면에 모아 분석한다. AI가 불만이 담긴 리뷰를 감지하고 답변 초안까지 작성해 병원이 부정적인 고객 경험에 신속히 대응하도록 돕는다. ‘워치 마켓’은 온라인에 축적된 후기를 분석해 환자가 선호하는 시술이나 경쟁 병원의 반응을 파악하는 데 활용된다.
메디솔브AI는 지난 4월에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센츄리온 고도화에 나섰다. 양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애저와 애저 오픈AI를 활용한 서비스 개발, 의료 데이터 보안 체계 구축, 클라우드 인프라 최적화와 글로벌 진출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메디솔브AI는 장기적으로 환자가 병원에 들어온 뒤 피부 상태 분석부터 상담과 결제, 시술 후 주의사항 안내까지 진료 외 절차가 하나의 자동화된 흐름으로 이어지는 ‘스마트 클리닉’을 구현한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