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 속에 세금을 신용카드 할부로 납부하고 카드대금 일부는 다음달로 넘기는 이른바 ‘미루는 결제’가 늘고 있다. 올해 3분기 세금 관련 카드 결제액 증가분의 90% 이상이 할부에서 발생했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잔액이 최근 감소한 가운데 리볼빙 이월잔액은 7조원을 넘어섰다. 당장의 자금 부담을 분산하거나 상환 시점을 늦추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27일 여신금융협회의 8개 전업카드사 이용 실적을 분석한 결과, 올해 3분기 개인 신용카드의 ‘국세·지방세 등’ 할부 이용액은 3조527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7505억원)보다 7768억원(28.2%) 증가했다. 반면 일시불 이용액은 9조3721억원으로 0.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금 관련 카드 결제액 증가분의 대부분이 할부에서 발생한 셈이다.

전체 세금 관련 카드 결제액에서 할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약 27.3%로 지난해 같은 기간(약 22.8%)보다 4.5%포인트 상승했다. 월별로는 세금 할부 이용액이 8월 7646억원에서 9월 1조958억원으로 한 달 새 3312억원 늘었다.

세금 결제는 납부 일정에 따라 월별 편차가 크지만, 분기 전체로 보면 할부 이용액 증가세가 일시불보다 두드러졌다. 세금처럼 납부를 피하기 어려운 지출을 한 번에 해결하기보다 여러 달에 나눠 부담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카드대금 상환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결제성 리볼빙 이월잔액은 7조5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말(6조7245억원)보다 3276억원(4.9%) 증가했다. 7월 말 6조8759억원과 비교해도 두 달 만에 1762억원(2.6%) 늘었다. 리볼빙은 카드 청구액의 일부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다음달 이후로 넘기는 방식이다.

반면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잔액은 최근 두 달 사이 감소했다. 카드론 잔액은 7월 말 42조7957억원에서 9월 말 42조3404억원으로 4553억원(1.1%) 줄었다. 현금서비스 잔액도 같은 기간 7조251억원에서 6조6172억원으로 4079억원(5.8%) 감소했다. 지난해 9월 말과 비교하면 세 항목의 잔액이 모두 증가했지만, 최근 두 달만 놓고 보면 카드론·현금서비스와 리볼빙의 흐름은 엇갈렸다.

8개 전업카드사를 개별적으로 살펴봐도 7월 말보다 9월 말 리볼빙 이월잔액이 모두 증가했다. 특정 카드사의 일시적인 변동이 아니라 카드업계 전반에서 상환을 다음달로 미루는 잔액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에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1.5%로 낮추면서 카드사들도 대출 취급 조절에 나섰다. 이후 8월 목표가 3%로 상향됐지만, 업계에서는 대출 확대 여력이 여전히 크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다. 카드론 등 대출 이용이 제한되면서 가계대출 총량 관리 대상이 아닌 결제성 리볼빙으로 일부 자금 수요가 이동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결제 시점을 늦추는 방식은 당장의 현금 유출을 줄이는 대신 금융비용 부담을 키울 수 있다. 리볼빙 이월금액에는 수수료가 부과되며 적용 수수료율은 최대 연 19%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이월된 대금에 다음달 카드 사용액까지 더해지면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세금 할부 역시 카드사와 이용 조건에 따라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경기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자금 융통을 위해 대출 대신 리볼빙을 활용하거나 세금 납부 시에도 일시불보다 할부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지난해에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정책 영향으로 리볼빙 잔액이 일시적으로 줄어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가계의 자금 부담이 카드 결제 방식에도 반영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