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연정광 제련수수료(TC) 하락으로 제련업계의 수익성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고려아연의 다양한 핵심광물 포트폴리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아연 제련 부문의 수익성이 둔화하더라도 구리와 황산, 게르마늄 등 다른 품목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 등 기초금속뿐 아니라 금, 은 등 귀금속과 인듐, 안티모니 등 희소금속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원료를 확보하는 단계부터 여러 유가금속의 가치를 따지고, 제련 과정에서는 이를 최대한 회수하는 복합제련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18일 증권가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은 보고서에서 아연정광 TC 하락에 따른 부담에도 구리, 황산, 게르마늄 등이 고려아연 제련 부문의 수익성 둔화를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아연 시장에서는 다소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아연 공급은 수요보다 많았지만, 국제 아연 가격의 기준이 되는 런던금속거래소(LME) 아연 가격은 오히려 연초보다 20% 넘게 올랐다.
신한투자증권은 그 이유로 ‘재고가 쌓인 곳과 부족한 곳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선물거래소(SHFE) 창고에는 아연 재고가 15만6000t까지 늘었지만, 정작 국제 거래의 기준이 되는 LME에서 당장 거래할 수 있는 아연 재고는 연초보다 60% 이상 줄었다.
다시 말해 아연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바로 사고팔 수 있는 아연이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오른 것이다. 전체 재고가 얼마나 많은지보다 필요한 시장에 물량이 제때 공급될 수 있느냐가 가격을 좌우한 셈이다.
하지만 아연 가격 상승이 곧바로 제련업체의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TC다.
중국 수입 아연정광 스팟 TC가 t당 -100달러 안팎까지 떨어지면서 아연 가격 상승에도 제련 마진을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아연 제련소가 광산에서 원료를 가져와 아연을 만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아야 하는데, 정광이 부족해지면서 오히려 돈을 더 얹어주고 원료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중국 제련소의 감산으로 TC가 반등하기 전까지 일반 제련업체의 수익성 압박이 2027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고려아연은 다른 품목을 통해 이런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게 신한투자증권의 분석이다.
우선 구리가 꼽힌다. 현재 거래소 구리 재고의 71.7%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몰려 있다.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해 구리 물량이 미국으로 선제적으로 유입된 영향이다.
반면, LME의 가용재고는 9만t에 불과하다. 세계 구리 소비량의 1.2일분 수준이다. 재고의 지역별 불균형 속에서 LME 구리 가격은 전년 대비 51% 상승했다.
아연 제련 마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구리 가격 강세가 고려아연의 수익성 하락을 일부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황산도 힘을 보태고 있다. 황산은 지난 3월 중국산 제품의 칠레 수입량이 0t을 기록할 정도로 공급이 빠듯해졌다. 이에 따라 황산을 사용하는 습식제련 업체들의 원가 부담도 커졌다.
고려아연에는 반대 상황이다. 아연·연 제련 과정에서 황산을 부산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올해 상반기 황산 매출총이익률은 약 10%로, 과거 2~3% 수준보다 크게 높아졌다. 황산이 전체 이익을 좌우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연 제련 부문의 수익성 악화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중장기적으로는 게르마늄 등 핵심광물이 주목된다. 중국은 2023년 8월 게르마늄과 갈륨에 대한 수출허가제를 도입했다. 이후 각국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지만 산업 수요까지 늘어나면서 핵심광물 확보를 둘러싼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핵심광물 비축 계획인 ‘프로젝트 볼트(Project Vault)’를 발표한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이에 따라 고려아연이 미국 테네시에서 추진하는 통합제련소 건설 사업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의 가치도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려아연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원료 확보 단계부터 원료에 포함된 여러 유가금속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익성 중심으로 원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제련 단계에서도 광물 회수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연과 연 등 특정 금속의 제련 여건이 악화하더라도 다른 금속과 부산물에서 수익성을 보완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연 스팟 TC 하락에 따른 마진 압박은 2027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나, 고려아연은 구리, 황산, 게르마늄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고 미국의 비축 전략이 프로젝트 크루서블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귀금속 가격 상승까지 더해질 경우 실적 개선에 추가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한투자증권은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관련 불확실성도 한 단계 낮아진 것으로 평가했다. 지난 9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는 고려아연 이사회 측이 추천한 백인규 감사위원이 출석 의결권의 81.8% 지지를 받아 선임됐다. 이에 따라 이사회는 고려아연 현 경영진 측 12명, 영풍·MBK파트너스 측 7명으로 재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