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과 병실, 탈의실은 공공 장소이지만 범죄와 사고의 사각지대로 꼽힌다. 하지만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 설치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보니 불법 촬영이나 폭행, 낙상사고가 발생해도 즉각 대응이 어렵다.

이 같은 한계를 카메라 없이 인공지능(AI) 기술로 해결한 스타트업이 있다. 2020년 설립한 팸테크 기업 유니유니다. 팸테크는 ‘여성(femal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생명공학·신소재 등의 기술을 활용해 만든 여성을 위한 기술·상품·서비스 등을 일컫는 말이다.

한수연 유니유니 대표는 “어린 시절 네 살배기 남동생을 낙상사고로 허망하게 잃었는데, 그 이후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이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한 대표는 사람을 구하는 기술 개발에 골몰했다. 강남역·신당역 사건 등 일상 공간에서 끊이지 않는 강력범죄와 응급 사고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피해자가 직접 눌러야 해 의식을 잃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기존 비상벨의 한계를 파고들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유니유니는 ‘쌔비(SAVVY)’를 개발했다. 쌔비는 천장에 설치된 센서가 사람 움직임을 살피는 기술을 도입했다. 카메라처럼 사람의 얼굴이나 신체 영상을 찍는 대신 적외선을 이용해 사람과 센서 사이의 거리 변화를 측정한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사람이 쓰러졌는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는지, 누군가 침입했는지 등을 판단한다. 사람 모습을 그대로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우려도 없다.

특히 위험 징후를 먼저 포착한다는 점에서 기존 안전장치와 차별화된다. 쌔비는 불법촬영 의심 행동을 비롯해 낙상·의식 소실, 폭행·침입, 약물 투약 의심, 장시간 부동, 2인 이상 동반 입실 등 8가지 이상의 위험 시나리오를 감지한다. 이상 행동이 포착되면 현장 스피커로 계도 방송을 내보내 경고하고, 응급 상황 발생 시 관리자 앱이나 관제센터로 알림을 전송해 경찰 연계까지 신속하게 이어준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 한 자치구 관할 여자 화장실에서 움직임을 멈춘 사람이 관찰되자 쌔비는 구청 담당자 컴퓨터에 ‘1번 칸 실신 의심’이라고 팝업과 알림음을 전송했다. 화면을 살핀 담당자는 낙상으로 판단해 구조 인력을 보냈고 환자 이송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쌔비가 상황을 알린 지 4분15초 만에 상황은 종료됐다.

한 대표는 “실증 기관 분석 결과 단순 장난이나 실수로 인한 오신고를 자체 필터링해 출동 행정력 낭비를 70% 이상 줄였다”며 “영상이나 음성을 수집하지 않아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며 24시간 실시간 안전관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설립 이후 사업 성과가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강남구청, 성북구청, 제주국제공항, 원자력병원, 대진대 등 전국 50여 개 기관과 시설에 1000대 이상의 쌔비가 설치돼 운영 중이다. 공공조달 시장에 이어 요양·의료기관, 교육·복지시설, 호텔 등 민간 영역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최근 유니유니가 공을 들이는 분야는 고령층과 여성 등 안전 취약계층이 머무는 시설이다.

유니유니는 센서와 AI 기술을 자체 개발해 현장별로 위험 상황을 학습·분석할 수 있도록 고도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KC 등 각종 인증과 한미 특허 21건을 확보했다. 총 3건의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혁신상도 수상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요양원과 스위스 병원 공급에 이어 말레이시아 슬랑오르주의 현지 기업과 사업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 상사 등과 손잡고 전 세계 영업망도 구축하고 있다. 한 대표는 “유럽과 북미 등 글로벌 시장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 강화 흐름은 비영상 AI 센서 기술을 보유한 유니유니에 호재”라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단순히 제품을 파는 기업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안전하게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안전의 상식’을 만들어가고 싶다”며 “공공조달 성과를 발판 삼아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세계 시장에서도 활약하겠다”고 말했다.

한수연 유니유니 대표가 왼손에 쌔비를, 오른손엔 쌔비로 분석한 화면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이승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