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농산물 유통 거품을 빼겠다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구축한 ‘농수산물 온라인 도매시장’을 놓고 장부 옮기기에 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거래의 95% 이상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대방을 사전에 정하는 ‘지정거래’라는 분석에서다. 이 때문에 유통단계 축소와 물류 효율화라는 당초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다.
26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농산물 유통혁신 태스크포스(TF) 논의 자료’에 따르면, 온라인 도매시장 거래 중 95% 이상이 지정거래 방식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산지와 대형 유통업체가 기존 관계를 유지한 채 거래를 온라인 도매시장에 올리는 방식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온라인 도매시장에 기대했던 유통단계 축소와 물류 효율화, 유통비용 절감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어렵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기존 도매시장의 복잡한 거래 구조와 불필요한 물류 이동을 줄이기 위해 2023년 11월 출범했다.
산지에서 출하된 농산물을 도매시장에 반입한 뒤 경매와 중도매인을 거쳐 소비지로 보내는 기존 방식과 다르다. 온라인 도매시장은 온라인에서 거래를 성사시킨 뒤 판매자가 구매자가 원하는 곳으로 바로 배송하는 방식이다.
정부 지원과 함께 시장 외형은 빠르게 커졌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온라인 도매시장 관련 예산·정책자금은 2023년 438억원에서 올해 1303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거래액도 2024년 6737억원에서 지난해 1조2364억원으로 늘어 정부 목표 1조원을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거래액 증가 자체만으로 정책 성과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기존 거래를 온라인에 옮긴 실적이 상당한 만큼 실제 유통단계가 얼마나 줄었고 물류비와 유통비용이 얼마나 낮아졌는지를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에 대해 지정거래 자체를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도매거래에서는 상대방을 정해 가격과 물량을 협의하는 거래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95%가 모두 기존 오프라인 거래를 온라인에 옮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견해다.
다만 정부는 문제점을 의식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원 방식을 손질하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최근 차관 주재 회의를 열어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거래 실적에 따라 제공하던 개별 지원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안건을 논의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장 초기에는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지원이 필요했지만 거래 실적과 가입자가 늘어난 만큼 개별 판매자·구매자 지원은 점차 축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거점 물류 체계와 정산 서비스, 플랫폼 고도화 등 모든 이용자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 지원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지정거래에서는 특정 판매자와 구매자가 거래를 성사시켜도 다른 참가자는 실제 어느 정도의 물량이 얼마에 거래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시장 참가자가 가격 정보를 참고해 새로운 거래를 형성하는 온라인 도매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농식품부는 앞으로 판매자와 구매자의 신원을 익명 처리하되, 거래가 끝난 뒤 실제 거래 물량과 단가는 공개하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개편하기로 했다.
제도 개선의 초점은 거래액 확대 중심의 운영 방식을 실제 유통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꾸는 데 있다.
농산물 유통비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농산물 유통비용률은 2020년 47.5%에서 2022년 49.7%로 상승한 뒤 2023년과 2024년에도 49.2%를 기록했다. 소비자가 농산물을 1만원어치 사면 약 4900원이 생산 이후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존 거래를 단순히 온라인에 옮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거래를 만들고 물류비와 유통비용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방향으로 시장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