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이상 고객의 정기예금이 전체 정기예금의 60%에 육박하는 등 은행 수신 영역에서 시니어의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고령층 인구 자체가 증가하는 데다 코스피 불장에도 시니어들의 안전자산 선호 성향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영향으로 해석된다. 이에 은행들도 예금시장 ‘큰손’이 된 시니어들을 잡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27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60대 이상 고객의 예금 잔액(예·적금, 요구불 포함)은 313조원으로 2021년 말(221조원) 대배 41.5%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이하 고객의 예금 증가율은 10%대 중반에 그쳤고, 40대는 오히려 12.5% 감소했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이 5대 은행 전체 예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4%에서 46.4%로 크게 올랐다. 규모로 보면 60대 이상의 예금은 30대(75조원)의 4배, 40대(96조원)의 3배 이상이다.
연 단위로 장기간 예치해두는 정기예금에서는 시니어 쏠림이 더욱 두드러진다. 60대 이상의 정기예금 점유율은 2021년 말 52.4%에서 올해 7월 말 57.2%로 올라 60%에 육박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최근 흐름이다. 코스피가 급등세를 탄 지난해 말부터 올해 7월 말까지 60대 이상 예금은 6000억원 상당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미만(-7.4%), 30대(-6.8%), 40대(-12.2%), 50대(-9.5%) 등 나머지 연령대가 일제히 은행 예금을 줄인 것과 대조된다.
통상 증시 호황기엔 예금이 주식·펀드로 옮겨가는 머니무브가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60대 이상은 이 흐름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던 셈이다.
은행권은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고령화 외에도 세대별 자산 형성 시기의 차이를 꼽는다. 고령층은 국내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기 전에 주택을 마련해둔 덕에 상대적으로 대출 상환 부담이 작고, 공격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소득 형성기인 30~50대가 주택자금 원리금 상환과 생활비 지출 부담을 크게 안고 있는 반면, 60대 이상은 자산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던 시기에 선제적으로 자산 형성을 마쳐 유동성 여력이 앞선다”고 말했다.
이어 “60대 이상은 은퇴 후 퇴직금과 자산 정리 자금이 유입되며 현금 유동성이 확보되는 시기”라며 “최근 증시 변동성 확대 속 자산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예금으로 집중된 것”이라고 전했다.
은행은 불어나는 시니어 자산을 잡기 위해 앞다퉈 특화 브랜드와 상품을 내놓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전국 19개 KB골든라이프센터를 중심으로 금융·건강·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시니어 케어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시니어 브랜드 신한 SOL메이트를 앞세워 만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최고 연이율 3.5%의 특판 정기예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하나은행 또한 그룹의 하나더넥스트 브랜드로 유언대용신탁과 자산 관리 서비스를 강화 중이다.
우리은행은 우리 원더라이프 브랜드로 연금 우대예금(최고 연 3.1%)을 운영하고 있으며, NH농협은행은 지난해 11월 지주 차원에서 선보인 NH올원더풀 브랜드 아래 상품군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은행이 고령층 고객 확대 현상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고령화하는 아시아’ 보고서에서 한국을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경제로 지목하며, 이에 따라 은행의 자금조달과 자산운용 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고령층이 늘수록 은행에 예금이 많이 유입되는 동시에 대출 비중은 낮아지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으로서는 시니어 예금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늘어나는 고령층 자산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연결할 사업 모델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가 커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