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시장이 심상치 않다. 미국-이란 전쟁이 터진 직후 전세계 에너지 가격이 폭주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농산물 가격까지 올라가고 있다. 전쟁 이슈에 슈퍼 엘니뇨까지 겹치면서 소프트 농산물인 커피, 원당, 코코아 가격이 먼저 뛰었고 이젠 밀, 콩, 옥수수 등 3대 곡물 가격까지 움직이고 있다.

이들 가격은 단기적인 폭등이 아닌 추세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장에선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일반 물가도 함께 오르는,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 공포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나온다.

11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밀 선물 가격은 최근 6개월 간 25% 넘게 상승했다. 콩과 옥수수 가격도 같은 기간 각각 10%, 29% 이상 올랐다.

올초 미국-이란 전쟁이 터진 이후 중동 지역의 에너지 생산과 유통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면서 카타르 등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겼는데, 이 문제가 곡물 시장에도 영향을 줬다.

전세계 비료의 약 70%가 질소계 비료다. 질소계 비료를 만드는 데에는 놀랍게도 천연가스가 사용된다. 질소계 비료의 핵심 원료인 암모니아를 만드는 공정에 천연가스가 투입된다. 따라서 천연가스 공급이 부족하면 질소계 생산이 함께 줄어든다.

질소계 비료는 콩과 옥수수 재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질소계 비료가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이들의 생산량 감소 우려가 불거졌다. 콩과 옥수수는 전통적으로 공급과잉 시장에 가깝지만,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곡물 수출량이 급감한 지 오래라 시장에선 더 민감한 반응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올해 찾아온 역대급 슈퍼 엘니뇨도 곡물 시장에 영향을 줬다. 엘니뇨는 북아메리카 지역에 고온 건조한 날씨를 만들어 밀과 옥수수 작황에 영향을 준다. 미국 농무부, LS증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체 옥수수 수확 예정 면적이 120만에이커 증가했지만, 생산량 전망치는 전월 대비 2.3부셀 하락한 1에이커당 180.7부셀로 나타났다. 재배면적이 증가했어도 엘니뇨로 고품질의 작물이 생산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기후예측센터 CPC/IRI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 엘니뇨가 지속될 확률은 90%가 넘는다. 엘니뇨는 이미 농산물 시장과 전세계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처럼 농산물 가격이 올라간다면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료용 곡물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유럽 축산 농가들의 파산 위험성이 커지고, 결국엔 식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 애그플레이션은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비용 충격, 핵심 공급망 차질, 기후 및 작황, 구조적인 수요 증가 등으로 촉발됐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 불안과 엘니뇨 충격이 나아져야 지금과 같은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완화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홍성기 LS증권 연구원은 “현재의 곡물 가격 상승세가 장기 사이클로 확장되려면 추가 작황 부진에 따른 2년 연속 내고 감소, 에너지 충격에 따른 비료 가격 상승 지속, 물류 차질의 영향 지속과 같은 요인들이 나타나야 한다”며 “공급 충격 요인이 이란 사태 완화로 해소될 가능성이 높지만 향후 전개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관련 투자상품들의 수익률은 상승한 상태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 상장된 밀, 콩, 옥수수 선물 가격에 연동돼 수익을 내는 KODEX 3대농산물선물(H)은 최근 6개월 간 13%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농산물 ETF(상장지수펀드)인 DBA(인베스코 DB 애그리컬쳐 펀드)도 같은 기간 9.81%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