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 등 불확실한 거시경제 여건 속에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금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금 매수에 나서기 시작했고,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도 활발히 유입되고 있다. 금과 함께 대표적인 귀금속 자산으로 분류되는 은과 백금, 경기 흐름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구리(동)에도 시선이 쏠린다.

1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되는 12월 인도분 금 가격은 최근 온스당 4500달러 선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상승폭이 10%에 육박한다.

금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식·채권·달러 등 전통자산의 변동성을 방어하기 위한 대체자산이자 인플레이션 대피처로 꼽힌다. 전체 원자재 시장에서 거래량과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 주요국 중앙은행이나 기관투자자들이 금을 하나의 투자자산군으로 분류해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미국 장기채 금리가 상승하고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불거졌다. 그러자 비달러 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이른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확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금은 비트코인과 함께 인플레이션이나 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한 대체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도 금 매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금 보유량은 7608만온스로 전월 대비 64만온스가량 늘었다. 21개월 연속 금을 매입하고 있다. 중국은 외환보유액 다변화, 탈달러 가속화, 위안화 입지 강화 전략의 일환으로 금 보유량을 계속 늘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인민은행의 준비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8% 수준으로 글로벌 중앙은행 평균(27%)에 한참 못 미친다.

그간 금 매입에 소극적이었던 한국도 13년 만에 금을 사들였다. 한국은행은 지난 2분기 ETF를 통해 소규모로 금을 매수했고 향후 금 보유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내 금 생산업체가 해외로 수출하려는 물량과 희망 거래 시기를 한은에 제시하면 한은이 운용계획과 시장 상황 등을 검토해 매입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한은은 과거 실물 금을 중심으로 금을 보유했으나 시장 상황에 따라 ETF를 포함한 여러 수단을 활용해 안전하게 금을 확보해나간다는 방침이다.

금 보유량을 늘리려는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금협회(WGC)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관계자의 89%는 향후 1년 동안 금 보유량을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신흥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금 보유량을 늘렸다.

금 가격을 추종해 수익을 내는 금융상품에도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다. 금 현물에 투자하는 ACE KRX금현물 ETF에는 최근 1개월간 5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몰렸다. 이 ETF는 확정기여형(DC)·개인형(IRP) 퇴직연금에도 편입될 수 있어 개인투자자들이 금 투자를 위해 많이 활용하는 상품이다. 다른 금 관련 ETF인 KODEX 골드선물(H)에 208억원, SOL 국제금에 67억원 등 투자자들의 자금이 유입됐다.

전문가들은 금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UBS는 최근 최고투자책임자(CIO) 데일리 노트를 통해 내년 상반기에 금 가격이 온스당 5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스당 4500달러에 머무르는 현재보다 10% 더 넘게 오른다는 얘기다. UBS는 실물자산에 관심이 있는 투자자들이라면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금을 적절히 배분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넓은 범주의 원자재 자산에 대한 투자도 함께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과 함께 귀금속 자산으로 분류되는 은과 백금 가격도 상승세를 보였다. 최근 한 달간 은과 백금 가격은 각각 16.22%, 8.74% 올랐다. 가격 등락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나는 은은 금보다 상승률이 더 높았다. 은 선물가격을 추종해 수익을 내는 KODEX 은선물(H)은 같은 기간 13.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경기 흐름의 가늠자이자 ‘닥터 코퍼(Dr. Copper)’라고 불리는 구리가격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구리가격은 최근 t당 1만4000달러를 넘어섰다. t당 1만달러도 안 됐던 구리가격은 미국의 관세 부과 논란과 핵심광물 개정안 발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미국 정부는 구리가 단순 원자재가 아니라 국가 안보·첨단산업의 필수 자원으로 쓰이고 있고 동판·파이프·케이블 등 구리 반제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며 50%의 고율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관세를 물기 전에 구리를 사재기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더들은 규제 강화 전 구리를 급하게 들여왔고 그 결과 COMEX의 구리 재고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2년 전 COMEX의 구리 재고는 전 세계 구리 재고의 1~2%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70%에 육박한다.

공급 측의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부각돼 구리가격을 끌어올렸다. 구리 광산이 모여 있는 남아메리카 지역에 폭우를 동반한 기상이변이 발생하면서 일부 기업들의 구리 광산 조업이 중단됐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해 산사태로 중단됐던 인도네시아 소재의 그라스버그 광산도 당초 계획했던 조업 정상화 시점을 연기했다. 인공지능(AI) 슈퍼사이클로 구리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국면에서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자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구리 실물에 투자하는 TIGER 구리실물 ETF는 최근 1년간 40%에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미국 증시에서는 구리 채굴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다. 구리가격 상승에 따른 마진 효과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구리 생산기업인 프리포트 맥모란은 최근 주가가 주당 80달러를 웃돌며 역사적 신고가를 경신했다. 다른 구리 채굴기업인 서던코퍼, 리오틴토 등도 최근 상승 랠리를 달리고 있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연내 구리가격은 t당 1만6000달러 선을 돌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