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빚투(빚내서 투자)’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한국 등 아시아 주요국에서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상품과 신용융자가 빠르게 불어나면서 연쇄적인 주가 급락 여파가 우려된다는 전망이 나왔다. ETF 상품에 따른 주가 급락과 함께 그동안 쌓인 신용잔고의 반대매매 여파로 증시 하락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8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머 캐피털 파트너스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이자 BNP파리바증권 아시아태평양 주식 리서치 부문 전 대표인 마니시 레이차우두리는 최근 기고문에서 아시아 증시 전반에 쌓이고 있는 레버리지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증시는 레버리지 투자의 위험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코스피는 인공지능(AI) 투자 열풍 속 개인투자자들의 신용융자와 고위험 ETF 투자가 크게 늘어난 뒤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30일까지 39% 급락했다.
이같은 ETF 급락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담보 가치가 떨어지자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콜이 잇따랐다. 이에 일부 투자자는 이를 감당하지 못한 채 반대매매로 투자자들의 주식이 강제 처분됐다. 대규모 반대매매가 생기자 연쇄적으로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기초체력과 무관하게 시장 전반의 낙폭이 커졌다는 것이다.
최근 신용거래 급증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인도의 마진거래(MTF) 잔고는 지난 2020년 말 10억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서 지난달 31일 163억달러까지 불었다. 또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신용융자 잔고 역시 2019년 초 680억달러에서 최근 2000억달러로 약 3배 증가했다. 일본도 2020년 초 180억달러였던 신용융자 잔고가 최근 350억달러를 넘어섰다.
레버리지 위험이 집중된 분야는 국가마다 다르다. 한국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에 신용자금이 몰렸으며 이후 두 종목의 주가는 각각 43%, 55% 급락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대형 기술주와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레버리지 자금이 집중된 만큼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인도는 신용융자 자금의 55%가 중·소형주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위험을 안고 있다. 반대매매가 한꺼번에 쏟아지면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종목에서는 매도 물량을 받아내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유동성이 높은 대형 우량주까지 내다 팔면서 시장 전반으로 충격이 번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에 각국 금융당국도 레버리지 위험을 낮추기 위한 규제에 나섰다. 한국은 변동성이 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를 억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인도 중앙은행(RBI)도 주식담보대출(LAS)을 활용한 주식 매입과 공모주 청약을 금지했다. 또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신규 신용계좌의 증거금 비율을 100%로 높였다.
다만 레이차우두리는 이 같은 조치가 위험이 확산하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이미 쌓인 불안 요인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또 다음번 급락이 한국처럼 대형주 쏠림에서 시작되지 않더라도 각국에 누적된 서로 다른 형태의 레버리지 구조에서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