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일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100일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과세 유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민병덕 의원에 이어 같은 당 박민규 의원까지 과세 유예론에 가세한 가운데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과세 시행 시기를 2030년으로 3년 늦추는 법안을 발의했다.
23일 박민규 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1월로 예정된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어제 민병덕 의원님께서 디지털자산에 대한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라며 “디지털자산기본법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내년 1월부터 과세를 시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현행 과세체계에서 취득가액 산정 등 세금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기준과 지침이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과세 시행이 임박했지만 거래소와 이용자 모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알기 어려워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국가 간 디지털자산 거래정보 자동교환체계(CARF)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전에 국내에서 먼저 과세를 시행하면 국내 거래소 이용자들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거래소 이용자의 거래내역은 과세당국이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에서 발생한 거래는 국가 간 정보교환체계가 충분히 구축되기 전까지 동일한 수준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취지다.
박 의원은 이 같은 상황이 국내 거래소 이용자의 해외 이탈을 부추기고 국내 디지털자산시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따른 과세 형평성 문제도 거론했다. 박 의원은 금융투자소득세가 폐지된 상황에서 디지털자산에만 별도의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은 과세보다 디지털자산시장을 뒷받침하고 성장시킬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정부가 준비되지 않은 과세를 강행하는 대신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병덕 의원은 전날인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공정하게 과세할 수 있는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 통과 이후로 과세 시행 시기를 늦출 것을 제안했다.
여당에서 과세 유예론이 잇따르는 사이 야당에서는 가상자산 과세를 2030년까지 3년 추가로 유예하는 법안이 추가로 발의됐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23일 가상자산소득 과세 시행 시기를 현행 2027년 1월 1일에서 2030년 1월 1일로 3년 연기하는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단순히 과세 시행 시기를 늦추는 데 그치지 않고 납세자가 자신의 소득금액을 정확하게 계산하고 신고할 수 있도록 가상자산사업자의 거래자료 제공 의무를 신설한 것이 특징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는 가상자산의 양도 또는 대여로 발생하는 소득금액을 계산하는 데 필요한 거래내역 등의 자료를 거래가 발생한 연도의 다음 연도 2월 말까지 해당 거래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현행 제도에서는 가상자산사업자가 소득세 부과에 필요한 거래내역 등을 과세관청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의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로 세금을 신고해야 하는 투자자에게도 거래내역과 소득금액 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가상자산 투자자가 여러 거래소를 이용하거나 가상자산을 양도·대여하는 등 거래유형이 복잡해지면서 개별 투자자가 자신의 과세 대상 소득을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자료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자에 대해서도 국세청장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기존 거래자료 제출의무 위반에 대한 시정명령 규정을 거래자에 대한 자료제공 의무 위반에도 적용하도록 했다. 해당 명령을 위반한 사업자에게는 현행 소득세법에 따라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김 의원은 “가상자산 거래가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과세 시점만 정해놓고 시행을 서두르기보다 정확한 소득 계산과 신고가 가능한 제도를 먼저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납세자가 자신의 거래내역과 소득을 제대로 확인하고 신고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번 개정안은 과세를 단순히 미루는 것이 아니라 2030년 시행까지 과세 체계를 정비하고 납세자의 신고를 뒷받침할 장치를 함께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가상자산 시장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납세자에게 불필요한 혼란과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의 개정안에는 과세 시행 시점이 늦춰지는 데 맞춰 기존 보유 가상자산의 취득가액 산정 기준일을 변경하는 내용도 담겼다.
현행법에서는 2027년 1월 1일 이전부터 보유한 가상자산의 취득가액을 2026년 12월 31일 당시 시가와 실제 취득가액 중 큰 금액으로 계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과세 시행 시기를 2030년으로 늦추면서 해당 시가 산정 기준일도 2029년 12월 31일로 변경하도록 했다.
또한 취득가액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 적용하는 필요경비 산정 규정과 비거주자의 국내원천 가상자산소득에 대한 과세 및 원천징수 관련 적용 시점도 2030년으로 조정했다.
과세 시행 시기를 늦추면서 관련 법률의 적용 시점까지 함께 정비해 제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가상자산 과세는 2020년 소득세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지만 시행 시기가 세 차례 연기됐다. 당초 2022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2023년과 2025년으로 두 차례 미뤄졌고, 2024년 세법 개정을 통해 다시 2027년으로 연기됐다.
내년 1월 1일부터 과세가 시행되면 가상자산 양도·대여로 발생한 연간 소득에서 기본공제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에 소득세 20%와 지방소득세 2%를 합쳐 22%의 세율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