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가상자산 소득 과세가 예정대로 시행되면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의 대규모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이 나타나며 국내 시장 거래대금이 30% 이상 급감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양도·대여분에 대해 연간 순이익 250만원까지 기본공제 후 초과분에 대해 기타소득으로 22%(지방소득세 2% 포함) 세율의 분리과세를 적용해 과세할 예정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늘어날 세금 부담을 피해 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으로 옮겨가는 투자자가 늘면서 국내 시장과 과세 기반이 동시에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웹3 리서치 전문기업 타이거리서치가 최근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242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3.1%가 과세 시행 후 과세 시행 이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반면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은 68.1%, “개인지갑을 활용한 탈중앙화거래소(DEX)나 개인 간(P2P) 거래를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은 64.2%에 달했다.
투자 규모 자체를 줄이거나 중단하겠다는 응답(69.7%) 외에도 과세를 피하기 위해 우회 경로를 추구하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나타났다.
과세 시행 이후 세원 대부분을 차지할 고액 투자자일수록 해외 거래소로 이탈할 가능성이 컸다. 투자 원금 1억원 이상 투자자 가운데 국내 거래소 이용은 줄이고 해외 거래소·개인지갑 이용을 늘리겠다는 비율은 76.4%로, 500만원 미만 투자자보다 23.5%포인트 높았다.
또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만 이용했던 응답자 866명 중에서도 65.4%가 과세 뒤 해외 거래소 또는 개인지갑을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타이거리서치는 설문조사 응답에 기초해 업비트·빗썸·코인원 등 국내 3대 가상자산 거래소 거래대금이 올해 약 859조8000억원에서 과세 제도가 시행되는 내년에 601조9000억원으로 30%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거래 수수료 의존도가 높은 거래소 매출도 1조330억원에서 7282억원으로 29.5%, 금액으로는 3048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거래대금 258조원, 매출 3048억원이 1년 새 사라지는 셈이다.
조윤성 타이거리서치 선임연구원은 “가상자산 과세가 국내 거래대금을 해외나 개인 지갑으로 밀어낼 경우 국내 유동성뿐 아니라 과세 운영을 위한 취득가액 확인과 세원 포착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밖에도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 10명 중 8명은 내년에 시행될 가상자산 소득과세를 반대하거나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조사 결과 투자자의 82.9%가 현행 과세안을 예정대로 시행하는 데 반대하거나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과세 제도가 시행되는 시점인 2027년 1월 1일도 이르다는 평가가 응답자의 75.2%를 차지했다.
다만 과세안에 당초 반대 입장을 밝힌 투자자들도 과세 제도 보완이 선행되면 과반수가 개선된 과세 제도에는 찬성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과세안에 처음부터 반대 의사를 밝힌 투자자 1786명(73.7%) 가운데 제도가 보완된다면 과세안에 찬성 의사를 표시한 사람은 920명(51.5%)이었다.
처음부터 과세안에 찬성한 637명(25.4%)과 ‘제도 보완 후 찬성’을 밝힌 920명을 합하면 1557명(63.4%)의 투자자가 과세안이 보완되면 납세에 동의하기로 한 셈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현행 과세안에 반대하는 원인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 자체보다는 세 부담의 적정성과 미완성된 과세 인프라 등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건 세 부담과 형평성 문제였다. 전체 투자자의 73.5%가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실효세율 22%에 대해 “과도하다”고 답했고, 65.2%는 “연간 250만원 기본공제 한도가 적다”고 지적했다. 72.1%의 투자자는 주식 등 다른 금융자산과 비교해 “과세기준이 공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내 상장주식 소액투자자의 경우 지난 2024년 금융투자소득세가 폐지된 뒤 양도차익에 대해선 비과세가 유지되는 반면 가상자산에 대해서만 실질세율 22%로 양도차익 과세가 이뤄진다는 게 투자자들이 가진 불만의 핵심이다.
납세자가 직접 취득가액과 수많은 거래내역을 입증해야 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70.6%를 기록했다. 정부의 과세 행정과 전산 시스템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비율도 66.4%에 이르렀다.
안광호 타이거리서치 연구원은 “여러 거래소와 개인지갑을 오가며 매매하는 코인 투자의 특성상 일반 개인이 손익을 완벽히 계산해 신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현행 과세안에 따르면 2027년 전에 보유한 코인은 실제 취득가액과 2026년 말 시가 중 큰 금액을 원가로 인정하고 원가를 확인할 수 없으면 양도가액의 50%를 취득가액으로 보는 방식이 마련돼 있다.
과세에 대한 우려는 세 부담이 큰 고액 자산가나 특정 세대에 국한되지 않았다.
가상자산 과세가 2030 청년 세대의 자산 형성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는 데 73%가 동의했다. 연령별로는 20대(78.7%), 30대(77.2%)가 동의를 표명했다. 40대(69.3%)와 50대(65.8%) 등 중장년층도 65% 이상 동의해 세대를 불문하고 청년층의 사다리가 끊어지는 데 공감했다.
투입 원금 규모별로 살펴봐도 불만은 고르게 나타났다. 100만원 미만의 소액 투자자조차 76.7%가 현행안을 반대하거나 유예해야 한다고 답했다. 1억~5억 원 구간의 고액 투자자는 그 비율이 88.7%까지 치솟았다.
해외에서 발생하는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거래정보 확보 한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내년부터 정부는 가상자산 역외 탈세 방지를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에 따라 주요 가입국과 국내외 거주자의 가상자산 거래 정보를 매년 자동으로 교환할 예정이다. 국가별로 홍콩·싱가포르·UAE는 2028년, 미국은 2029년부터 시차를 두고 시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CARF에 가입한 주요국에서도 모든 가상자산 거래를 포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이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국 온체인 활동 가운데 CARF 포착 범위에서 벗어난 비중은 이탈리아 76.6%, 미국 75.4%, 영국 65.2%, 일본 59.1%, 한국 27%로 집계됐다. 한국은 CARF 포착 범위에서 벗어난 비중은 주요국 대비 낮지만 금액(약 327억달러)은 일본(약 236억달러)보다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