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전’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e스포츠에서 자주 쓰이는 이 단어는 ‘상대방이 완전히 멸망할때까지 하는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주로 게임계에서 쓰이는 이 단어와 가장 비슷한 용어가 있다면, ‘치킨게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치킨게임은 영어에서 겁이 많은 사람을 비하하는 단어로 쓰이는 ‘치킨’을 비유로 누가 더 겁이 많아서 먼저 물러나는지를 시험하는 게임입니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자동차 충돌 게임에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산업에서 기업간 경쟁 양상을 설명하는 단어로도 많이 쓰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반도체 산업인데요. 특히 D램에서 2000년대에 벌어졌던 극한 가격 경쟁이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치킨게임’입니다.

그런데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는 새로운 치킨게임이 2030년경에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치킨게임은 한국, 중국, 미국이 국가의 미래를 걸고 끝장을 보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이번 게임에서 가장 불리한 국가는? 놀랍게도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와 2위 기업을 가지고 있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반도체 주식의 미래 주가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치킨게임이 벌어지기 전 D램 시장은 한국, 미국, 독일, 일본, 대만 등 다섯개 국가에서 10개 이상의 기업이 존재했습니다. 이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한국 기업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많은 기업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PC 시장이 성장하고 DDR2 전환이 진행되자 D램 기업들이 캐파(생산능력)를 늘리기 시작했고, D램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512Mb DDR2 가격은 2006년 약 6.8달러에서 2009년 약 0.5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손을 들고 나가떨어진 곳은 유럽이었습니다. 지멘스, 인피니온에서 분사된 키몬다가 먼저 파산했습니다.

다음은 일본이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도전에 일본은 NEC, 히타치, 미쓰비시 등을 합쳐서 엘피다를 출범시키는데요. 계속되는 치킨게임에 견디지 못하고 2012년 엘피다가 파산합니다.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이 인수하죠. 대만 D램 업체들인 난야, 프로모스, 파워칩 등은 파산하지는 않지만 시장에서 존재감이 눈에 띄게 하락합니다.

2013년경 치킨게임이 끝나면서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개 회사가 과점하는 체제로 바뀝니다.

과점 이후에도 D램 특유의 변동성은 유지됩니다. 2018년 클라우드 발 대호황이 찾아왔다가 2023년에는 삼성전자를 포함해 1·2·3위가 모두 수조원대 적자를 내는 역대급 하락이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2026년에는 AI 인프라 붐으로 이전까지 벌었던 모든 영업이익 만큼의 이익을 내는 ‘로또’가 터집니다.

2030년경에 치킨게임이 시작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당연히 D램 회사들의 대규모 캐파(생산능력) 확장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뿐만 아니라 CXMT(창신메모리), 난야 등의 업체들도 대규모 생산능력 확대에 나섭니다.

D램뿐만이 아닙니다. 낸드 메모리 시장에서도 3사 외에 YMTC, 키옥시아, 샌디스크 등이 대규모 증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장에 메모리 반도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2028년 정도로 예상하고, 2030년경에는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고 생존게임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엄청난 생산능력 증설과 메모리 가격 하락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증설을 서두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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