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전략이 달라지고 있다. 부동산과 현금 중심의 보수적인 자산배분에서 벗어나 국내외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자산 비중을 확대하면서도, 채권·달러·금 등 성격이 다른 자산을 함께 담아 변동성을 낮추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KB증권에 따르면 초고액자산가들은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성장산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면서도 개별 종목에 집중하기보다는 ETF를 통해 산업 전반에 분산 투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금성 자산과 중단기 우량채를 함께 보유해 시장 조정 때 추가 투자할 여력을 남겨두려는 수요도 나타난다.
위험자산을 일방적으로 늘리기보다는 주식·ETF 등 성장자산과 달러·금, 롱숏·멀티전략 등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양쪽에 배치하는 이른바 ‘바벨형 자산배분’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투자 대상 역시 넓어지고 있다. 일반 공모상품뿐 아니라 기업금융(IB)이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프라이빗 딜, 비상장주식과 대체투자 등 제한된 투자 기회를 찾는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KB증권의 설명이다.
초고액자산가의 요구가 복잡해지면서 자산관리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여러 금융회사를 동시에 이용하며 상품과 자산군별 경쟁력을 비교하는 고객이 늘어난 데다, 투자뿐 아니라 세무와 부동산, 상속·증여, 가업승계까지 한꺼번에 다뤄달라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KB증권은 금융자산 300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패밀리 오피스부’를 중심으로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 3월에는 전용 브랜드 ‘Success & Succession’을 선보였다. 개인 금융자산뿐 아니라 부동산과 비상장주식, 법인 지분, 소유기업과 다음 세대까지 관리 범위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
담당 프라이빗뱅커(PB)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투자와 세무·법률, 기업금융(IB) 등 4개 영역 17개 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한다. 고객별로 ‘패밀리오피스 커미티’를 구성해 투자전략과 금융상품부터 세무·법률·부동산 문제까지 함께 살핀다.
가업승계를 고민하는 고객이라면 세무사가 상속·증여세를 분석하고 변호사가 지분 구조와 법률 문제를 점검한다. 기업 관련 수요가 있으면 IB 인력도 참여해 자금조달과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을 검토한다. PB는 필요한 전문가를 연결하고 각 분야의 의견을 고객의 자산 구조와 장기 계획에 맞게 조율한다.
고영륜 KB증권 WM영업본부장은 “고객 개인의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가문의 자산과 소유기업, 다음 세대까지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패밀리오피스”라며 “전통적인 자산관리 역량에 투자·IB 전문성과 KB금융그룹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결합할 수 있다는 데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KB금융그룹 계열사도 고객 수요에 따라 연계한다. 예금·대출은 은행, 투자상품은 증권과 자산운용을 활용하고 스타트업 설립이나 기업 투자 수요가 있을 경우 투자 전문 계열사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초고액자산가에게는 투자 수익률뿐 아니라 자산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 이전할지도 중요한 의사결정 요소다. 주식 비중이 큰 고객 역시 단순한 추가 매수·매도 여부를 넘어 보유자산의 위험과 상속·증여 시점, 이에 따른 세 부담을 함께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
KB증권은 초고액자산가 고객의 자녀와 미래 자산가를 대상으로 ‘Next Summit’도 운영하고 있다. 금융시장에 대한 인사이트와 문화·예술 콘텐츠, 또래 간 네트워킹 기회를 제공해 향후 가문의 자산이나 기업을 이어받을 세대가 투자 안목과 의사결정 역량을 쌓도록 지원한다.
김동욱 KB증권 패밀리 오피스부 부장은 “패밀리오피스는 단기적인 상품 판매를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 가문과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비즈니스”라며 “전문가와 그룹 계열사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체계를 강화해 고객의 자산과 기업, 다음 세대까지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