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심영재 특파원] 뉴욕증시가 일제히 하락 마감됐다.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긴장 고조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미국 장기 국채 금리까지 급등하면서 위험자산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와 고금리 장기화에 대한 부담이 동시에 시장을 압박했다.

CNBC에 따르면, 9일(현지시각) S&P500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7.16포인트(0.48%) 하락한 7636.36에 거래를 마쳤다. 나스닥종합지수는 168.07포인트(0.64%) 내린 2만6253.30을 기록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405.41포인트(0.77%) 떨어진 5만2380.70에 마감됐다.

중소형주 중심의 러셀2000 ETF는 4.02포인트(1.36%) 하락한 290.65를 기록했다. 주요 지수 가운데 낙폭이 가장 컸다. 장기 금리 상승이 자금 조달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리 변화에 상대적으로 민감한 중소형주에 매도세가 집중됐다.

국제유가 100달러 돌파…인플레이션 경계감 재점화

이날 시장의 핵심 변수는 국제유가였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동 지역의 에너지 공급 차질 가능성이 부각됐고 원유 가격은 전날에 이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브렌트유 선물은 3.36% 상승한 배럴당 101.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3.25% 오른 배럴당 96.05달러로 마감됐다. 두 유종 모두 지난 5월 이후 가장 높은 종가를 기록했다.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유가 상승이 미국 물가에 미칠 영향으로 이동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운송비와 생산비를 거쳐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업종별로 상반된 영향을 미쳤다. 에너지 기업에는 판매 가격 상승에 따른 실적 개선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운송과 소비재를 비롯한 상당수 업종에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가계의 에너지 지출 증가가 다른 소비를 제약할 가능성도 있어 경기와 기업 실적에 대한 경계감까지 높일 수 있다.

토머스 마틴 글로벌트인베스트먼츠(Globalt Investments)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수준에 도달할 경우 시장의 관심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 시장이 고유가를 일정 부분 견디고 있지만 추가 상승 시 물가와 금리 전망을 동시에 흔들 수 있다는 의미다.

10년물 4.857%로 2023년 11월 이후 최고…재무부 바이백도 기대 못 미쳐

채권시장에서는 미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며 증시의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 확대 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 예상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장기채 금리가 오히려 상승했다.

미 재무부는 장기 국채 바이백 규모를 세 배 늘어난 60억달러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달 국채 바이백 규모를 최소 두 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힌 데 이은 추가 조치다.

그러나 시장 일부에서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이 더 공격적인 바이백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피터 부크바 더보크리포트(The Boock Report) 최고투자책임자에 따르면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바이백 규모가 70억~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발표가 이보다 작은 60억달러에 그치면서 장기채 수급 개선에 대한 기대가 약화됐다.

이에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4.857%까지 상승하며 2023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날에도 10년물 금리가 시장의 주요 경계선으로 꼽히는 4.8%를 일시적으로 넘어선 만큼 장기 금리 상승세 자체가 뉴욕증시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유가와 국채 금리가 동시에 상승했다는 점도 부담이다. 유가 상승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국채 금리 상승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과 주식 가치평가에 적용되는 할인율을 끌어올린다. 특히 성장주와 중소형주는 높은 금리 환경에 상대적으로 민감해 이날 나스닥지수와 러셀2000 ETF가 하락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고유가·고금리 공존 부담…물가와 연준 금리 경로가 다음 변수

시장의 초점은 이제 고유가와 고금리가 얼마나 오래 동시에 지속될지에 맞춰지고 있다. 유가 상승이 단기간에 그칠 경우 물가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제한될 수 있지만 배럴당 100달러 이상의 가격이 장기화되면 인플레이션 전망과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10년물 국채 금리가 4.857%까지 올라선 상황에서 유가가 추가 상승하면 연준의 정책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질 수 있다.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수록 기업의 차입 비용과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가계 금융비용도 함께 높아져 실물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토머스 마틴 글로벌트인베스트먼츠(Globalt Investments)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높은 유가와 금리에 대한 우려에도 주식시장이 비교적 견조하게 버티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다만 주식시장에 대한 낙관적인 투자심리와 금리 상승에 대한 강한 전망이 동시에 극단적인 수준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두 흐름이 장기간 공존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노동절 휴장으로 짧아진 이번 주 뉴욕증시는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에 이어 장기 국채 금리라는 변수를 동시에 소화하고 있다. 향후 관건은 국제유가가 100달러 위에서 추가 상승하는지와 10년물 국채 금리가 4.8%대에서 안정을 찾는지 여부다. 여기에 미국 물가지표가 인플레이션 압력의 확대 여부를 확인할 다음 변수로 꼽힌다.

결국 이날 뉴욕증시의 하락은 특정 기업이나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유가와 금리라는 거시 변수의 동반 상승이 위험자산의 가치평가를 압박한 결과로 요약된다. 국제유가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극하고 장기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환경에서는 연준의 통화정책 기대와 기업 실적 전망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시장의 경계감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