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에 장기간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세금 부담을 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한 벤처기업에서는 회사가 투자자의 주식을 직접 사들이는 ‘자기주식(자사주) 취득’이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데, 자사주 소각을 원칙으로 하는 상법 개정으로 기존에 존재하던 의제배당 과세 문제가 벤처투자 회수 과정에서 더욱 부각될 수 있어서다.
4일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상법상 자사주 제도 변화에 맞춰 벤처투자자의 투자금 회수 단계 세제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3월 6일 시행된 개정 상법에 따라 기업이 새로 취득한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취득일부터 1년 안에 소각해야 한다. 임직원 보상이나 경영상 목적 등 자사주를 계속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자사주 보유·처분 계획을 마련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 예외적으로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다. 기업이 자사주를 장기간 보유하면서 대주주의 경영권 방어 등에 활용하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비상장 벤처기업 투자자의 투자금 회수다.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경우라면 주식시장에서 보유 주식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장의 경우 주식을 사줄 투자자를 직접 찾아야 한다. 적절한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회사가 투자자의 주식을 직접 사들이는 자사주 취득이 투자금 회수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회사의 자사주 취득 이후 소각과 연결될 경우 세금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현행 소득세법은 주식 소각이나 자본 감소로 주주가 받는 금액이 해당 주식을 취득하는 데 사용한 금액을 초과할 경우 그 초과액을 ‘의제배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 배당금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주식 소각 등을 통해 투자 원금을 넘어서는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면 세법상 배당과 같은 성격의 소득으로 보는 것이다.
다만,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했다고 해서 투자자의 매각 대금이 곧바로 의제배당으로 과세되는 것은 아니다. 자사주 취득 및 소각의 목적과 과정, 거래의 실질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세무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반면 개인이 일정한 요건을 갖춘 벤처기업 등에 직접 출자해 취득한 주식은 출자일부터 3년이 경과하는 등 법에서 정한 요건을 충족해 양도할 경우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장기간 위험을 감수하는 개인의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세제 혜택이다.
같은 벤처기업 투자이익이라도 투자금 회수 방식과 거래의 실질에 따라 세금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개인이 비상장 벤처기업에 1억원을 직접 투자해 주식을 취득했고 5년 뒤 주식 가치가 5억원으로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투자자에게 주식을 5억원에 양도하면 4억원의 양도차익이 발생한다. 해당 주식이 벤처투자 관련 양도소득 비과세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면 이 양도차익은 양도소득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해당 주식을 5억원에 취득하고 이후 소각하는 구조라면 세금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거래의 실질이 주식 소각에 따른 자본 환급으로 판단될 경우 투자자가 받은 금액 가운데 주식 취득가액을 넘어서는 4억원이 의제배당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의제배당으로 판단되면 세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의제배당은 배당소득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른 이자·배당소득과 합산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배당소득이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 등 다른 종합소득과 합산돼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소득 규모에 따라 소득세 최고세율인 45% 구간까지 적용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투자이익이 투자금을 회수한 한 해에 집중적으로 소득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같은 문제는 자사주 소각을 원칙으로 한 상법 개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의제배당 과세 자체가 이번 상법 개정으로 새로 생긴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회사가 주주의 주식을 취득한 거래가 실질적으로 주식 소각이나 자본 환급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의제배당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다만 과거에는 회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계속 보유하거나 일정한 목적에 따라 처분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컸지만, 개정 상법 시행으로 취득 후 1년 내 소각이 원칙이 됐다. 이에 따라 비상장 벤처기업의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도 자사주 취득 이후 소각에 따른 세금 문제가 이전보다 부각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벤처업계에서는 투자 단계와 회수 단계의 세제가 엇박자를 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일정 요건을 갖춘 벤처투자에는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지만, 기업공개가 무산돼 제3자 매각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가 투자자의 주식을 직접 취득한 뒤 소각하는 경우 투자이익이 배당소득으로 과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등에 인수돼 기업공개 필요성이 사라진 비상장 벤처기업의 기존 투자자 역시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일정 요건을 충족한 벤처기업 투자에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지만, 비상장 벤처기업이 투자자의 주식을 자사주로 취득한 뒤 소각하는 경우에는 의제배당 과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비상장 벤처기업의 경우 자사주 매입이 투자금 회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회수 단계의 세제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벤처기업 투자자가 회사에 주식을 매각하는 거래를 폭넓게 양도소득으로 인정할 경우 배당소득 과세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회사가 주주에게 이익을 배분하면서 형식만 자기주식 매매 형태로 꾸미는 경우까지 세제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제도를 손질하더라도 소액투자자 등 적용 대상을 명확히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