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첩보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장면입니다. 백악관 웨스트윙 상황실(situation room)에 모인 대통령과 참모들이 서로를 쳐다보는 사이 갈등은 극적으로 풀리고, 버튼 누르기는 없던 일이 됩니다.

냉철한 현실주의 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가 2024년 내놓은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How States Think)’는 이런 결정적 선택의 순간을 영화 장면처럼 스케치하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국가의 중대한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조금은 딱딱하지만) 오밀조밀하게 풀어냅니다.

생각해 보죠. 인간에게 합리성이 정신적 판단의 과정이라면, 국가의 합리성은 ‘시스템’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됩니다. 방대한 정보, 이를 분석하는 전문가 집단의 숙의와 토론, 그런 절차를 규정한 제도가 시스템을 채웁니다.(언론의 의제 설정과 충실한 보도 역시 그 시스템의 일부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요즘 논란이 되는 이재명 대통령의 SNS 소통 방식이 ‘꼬리 질문’처럼 따라붙습니다. 통치자의 대국민 메시지가 표출되는 방식과 내용이 이런 시스템의 관점에서 과연 적정한지 강한 물음표가 생기기 때문이죠. 대통령의 언어는 날것의 메시지를 넘어 국가 시스템의 외피를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메시지는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관리와 보존의 대상입니다. 후대가 듣고 배우게 됩니다. 당연히 그 메시지는 합리적 사고에 터 잡은 시스템의 영역에서 정제되고 숙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해서 미어샤이머 교수는 국가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호모 테오레티쿠스(Homo Theoreticus·이론에 기반한 추론형)’와 ‘호모 휴리스티쿠스(Homo Heuristicus·직관적 결정형)’로 구별합니다. 정부 판단 과정에서 비합리성과 왜곡이 생기는 이유는 지도자가 정책을 만들 때 유추나 직관에 기반한 ‘지름길’을 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이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한 닉슨·트럼프 행정부 사례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긴장한 지도자가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서 다른 정책결정자들이 그런 지도자를 미리 배제할 때가 있다. 1974년 여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로 엄청난 압박을 받았을 때, 그가 감정적으로 취약해질 것을 우려한 참모들이 있었다. 제임스 슐레진저 국방장관은 대통령이 지휘 계통을 우회해 비합리적인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 마크 밀리 장군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11월 대선 패배로 감정적으로 무너질까 봐 우려했다. 그래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정부 관료들 및 중국 측 관계자들과 협의했다. (본문 中)

1974년 슐레진저 장관의 대응은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Pentagon Kept Tight Rein In Last Days of Nixon Rule)에 생생히 기록돼 있습니다. 찾아보니, 당시 슐레진저는 닉슨이나 그의 보좌관이 국방부의 통상적 지휘 체계를 거치지 않고 군과 접촉해 헌법 절차를 무력화할 가능성을 주시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염려한 시나리오는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1기의 밀리 장군 사례는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2021년 9월 펴낸 ‘위험(Peril)’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밀리 장군은 트럼프가 연임 도전에 실패하고 국회의사당 침탈 사건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리줘청 중국 합참의장과 비밀리에 통화했다고 합니다. 미국 정세 불안에 중국이 불안과 오판을 하지 않도록 미리 소통에 나선 것입니다.(그런 밀리를 상대로 트럼프는 2기 취임과 함께 국방부 청사에 걸린 밀리의 초상화를 철거하며 뒤끝을 보입니다)

두 사례 모두 위험한 호모 휴리스티쿠스적 상황에 대비해 시스템을 구성하는 관료 집단이 적극적으로 작동한 경우입니다. 대통령의 잦은 SNS 소통에서도 이런 시스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용과 형식, 빈도 모두 전례가 없는 소통 방식은 국민에게 안도감을 줘야 할 정부를 오히려 불안의 진원지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평정심을 잃은 것 아니냐는 여론의 반응을 참모들은 가볍게 흘려들어선 안 됩니다.

대통령의 직관적인 메시지는 시스템에 기반해 정책을 체계적으로 완성해야 할 전문 관료들의 역량까지 훼손합니다. 부동산 정책부터 농지 전수조사까지, 대통령이 일단 메시지로 질러놓고 여론이 반발하면 후퇴하는 일이 반복되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외국도 우리를 주시합니다. 대통령의 과도한 SNS 소통이 일으키는 소음은 한국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에게 중요한 동향 보고의 재료입니다. 최근 늘어난 한·미 당국 간 이상 징후, 우크라이나와의 외교 갈등까지 본국에 보고할 재료들이 차고 넘칩니다.

작은 불씨를 방치하면 큰불이 됩니다. 닉슨과 트럼프 행정부의 사례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합리적 사고가 흔들릴 것에 대비한 시스템의 작동이었습니다. 지금의 SNS 소통 논란은 그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이슈이지만, 국민 일상에 빈번하게 불안과 걱정, 반발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내기 전, 정부 내 장·차관과 청와대 참모 등 ‘시스템의 손’을 거친 뒤 대통령의 소통 메시지가 다가왔으면 합니다. 그런 일 하라고 국민 세금에서 녹을 받는 엘리트 집단입니다.

바닥에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매 정권마다 만나는 참모들의 킬러 문항. 과연 누가 그 까다로운 방울을 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