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라면 누구나 큰 수익을 꿈꾼다. 주가가 급등할 종목을 남들보다 먼저 찾아내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일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시장을 크게 이기는 수익을 5년, 10년 꾸준히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30년 안팎 투자 세계에서 살아남은 대가들은 이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에 겸손하다. 큰 수익보다 꾸준한 수익, 그리고 복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의 위대한 투자자’ 8번째 주인공은 37년째 시장에서 굳건히 살아남은 최권욱 안다자산운용 회장(65)이다.
최권욱 회장은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박이 아니라 생존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투자 기회처럼 보여도 모든 자산을 한 곳에 쏟아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의 예측은 언제든 빗나갈 수 있고, 한 번의 치명적인 손실은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투자 인생에는 한국 자본시장의 굵직한 변곡점이 자리 잡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0년 전후 닷컴 버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시장이 급변하는 순간마다 그는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고, 실패를 통해 투자 원칙을 다듬었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 주식시장이 반 토막 나는 와중에도 수익을 지켜낸 경험은 그의 투자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권욱이 투자업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9년이다. 서강대 독문과를 졸업한 그는 국민투자신탁에 입사했다. 국제부를 지원했지만 첫 발령지는 채권운용부였다. 이후 기획부에서 운용역 선발 제도 개선에 참여했고, 이듬해 직접 운용역 시험에 응시해 주식운용 업무를 맡게 됐다.
그는 입사 초년생 시절부터 시장의 상승과 하락을 모두 경험했다. 1980년대의 오랜 상승장이 끝나고 주가가 급락하는 과정에서 투자신탁회사들이 과도한 차입으로 부담을 떠안는 모습도 지켜봤다. 시장의 낙관론이 금융회사 전체의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찍 체감한 셈이다.
최권욱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1997~1998년 외환위기다. 당시 서울투신에서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던 그는 시장의 하락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고 판단했다. 주식을 전량 매도하는 대신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을 활용해 위험을 헤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시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파생상품을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던 시기였다. 그가 운용한 타겟4호 펀드는 코스피 770선에서 설정됐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며 지수는 330선까지 추락했다. 시장이 절반 이상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해당 펀드는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했다. 주식 포트폴리오의 시장 민감도를 계산해 선물 매도 규모를 조정하면서 하락 위험을 줄인 결과였다.
최권욱이 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은 단순히 폭락 장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국면이 바뀌었을 때 대응을 달리하는 일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유동성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그는 시장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하락 위험을 피하는 데 집중하던 전략을 상승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후 운용한 타겟4호와 테크노4호·6호 펀드는 큰 수익을 기록했다.
그는 시장을 무조건 낙관하거나 비관하는 태도 모두 경계한다. 위험이 클 때는 방어하고, 환경이 바뀌면 다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 전망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에 맞춰 판단을 수정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외환위기에서 위험 관리의 중요성을 체득한 최권욱도 시장의 열기에 휩쓸린 경험이 있다. 1999년 코스모투자자문을 창업한 직후 찾아온 ‘닷컴 버블’이다.
당시 한국 증시는 외환위기 이후 벤처기업 육성 정책과 인터넷 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뜨겁게 달아올랐다. 통신 인프라 기업과 인터넷 플랫폼 기업 등 정보기술(IT) 관련 종목의 주가가 단기간에 몇 배씩 뛰었다. 시장에는 새로운 산업이 열어갈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기대가 팽배했다.
최권욱 역시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투자 기회가 넘쳐난다고 판단해 레버리지를 확대했다. 그러나 버블(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뒤늦게 위험 관리에 나섰지만 이미 상당한 손실을 입은 뒤였다.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였던 만큼 충격은 더욱 컸다.
그나마 기업 분석과 가치평가라는 기본 원칙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 덕분에 다른 시장 참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큰 손실을 입었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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