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의 전성시대다. 몇천 원짜리 패스트푸드부터 한 끼에 2만원을 훌쩍 넘는 프리미엄 버거까지 선택지는 어느 때보다 다양해졌다. 유명 셰프가 만든 수제버거가 등장하고 해외에서 이름을 날린 브랜드들도 앞다퉈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선다. 햄버거 하나를 먹기 위해 긴 줄을 서는 풍경도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햄버거 가게의 모습은 처음부터 이랬던 게 아니다.

메뉴판에서 햄버거를 고르고 카운터에서 주문한다. 주방에서는 직원들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몇 분 뒤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나온다. 음식을 받아 직접 자리로 가져간다.

리처드 맥도날드와 모리스 맥도날드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날드의 이름을 만든 사람들이자 현대 패스트푸드 시스템의 원형을 만든 주인공들이다.

흥미롭게도 맥도날드 역사에는 사실상 두 개의 출발점이 있다. 맥도날드 형제가 첫 식당을 연 1940년과 레이 크록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55년이다. 여기에는 꽤 복잡한 사연이 있다.

맥도날드 형제는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직장을 잃으면서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제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처음부터 음식 장사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첫 번째 꿈은 영화였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했고 어렵게 모은 돈으로 극장까지 운영했다. 하지만 대공황을 버티지 못했다. 결국 빚을 안은 채 극장을 처분하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했다.

1937년 아버지와 함께 캘리포니아의 한 공항 근처에서 작은 매점을 시작했고 1940년 샌버너디노로 자리를 옮기고 자신들의 성을 딴 ‘맥도날드’를 열었다.

처음부터 햄버거집은 아니었다. 주력 상품은 바비큐였다.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드라이브인 방식의 식당으로 햄버거는 수십 가지 메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장사가 잘되기는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메뉴가 너무 많았다. 주문받고 음식을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많은 직원을 고용해야 했다.

형제는 매출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 같은 몇몇 메뉴에 주문이 집중돼 있었다.

두 사람은 잘되던 식당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그리고 주방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다. 공터에 주방 구조를 그려놓고 직원들을 움직여가며 어떻게 해야 햄버거를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는지 실험했다.

한 명의 요리사가 햄버거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대신 업무를 잘게 쪼갰다. 한 사람은 패티를 굽고, 다른 사람은 빵을 준비하고, 또 다른 사람은 재료를 조립했다.

서빙 직원도 없앴다. 손님이 직접 카운터로 와서 주문하고 음식을 받아 가도록 했다. 식기도 최소화했다. 메뉴를 단순화하고 인력을 줄이는 대신 음식을 만드는 속도는 획기적으로 높였다.

오히려 처음에는 손님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차 안에 앉아 있으면 직원이 주문받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서비스에 익숙했던 미국인들에게 직접 차에서 내려 주문해야 하는 맥도날드는 불편한 식당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장점이 드러났다. 음식이 빨리 나왔고 가격도 저렴했다. 특히 택시기사와 건설노동자, 외판원처럼 빨리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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