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들이 일본 청년보다 결혼과 출산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혼 의향과 이상적인 자녀 수 모두 한국이 일본보다 높았다.
하지만 실제 출산율은 정반대인 상황이다.한국의 2025년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인 반면 일본은 1.14명으로 한국보다 높다.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한국 청년들이 실제로 가족을 꾸리기까지 넘어야 할 현실적인 장벽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30일 일본 센다이 웨스틴호텔에서 열린 ‘한일 저출산 대응 교류위원회’ 1차 회의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한·일 청년 의식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번 조사는 지난 6~7월 한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만 20~39세 청년 각 2000명씩 총 4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실시됐다.
조사 결과 한국 미혼 청년의 81.4%는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결혼하고 싶은 상대를 만나면 결혼하고 싶다’는 응답이 37.1%로 가장 많았고, ‘가능하다면 언젠가는 결혼하고 싶다’ 35.7%,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다’ 8.6% 순이었다.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은 18.6%였다.
반면 일본 미혼 청년의 결혼 의향은 57.6%로 한국보다 23.8%포인트 낮았다. 반대로 ‘평생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일본 청년은 42.4%에 달했다.
이상적인 자녀 수를 묻자 한국은 ‘2명’이라는 응답이 52.6%로 가장 많았다. ‘1명’은 17.0%, ‘3명 이상’은 7.3%였다. 이를 합치면 76.8%가 자녀를 원한다고 답했다.
일본은 ‘2명’이 28.9%로 가장 많았고 ‘3명 이상’ 12.2%, ‘1명’ 9.4% 순이었다. 자녀를 원한다는 응답은 50.5%에 그쳐다.
이처럼 결혼하고 싶고 아이도 원하는 청년의 비율은 한국이 일본보다 높지만, 실제 출산율은 오히려 일본이 높은 상황이다. 각국에 따르면 한국의 2025년 합계출산율은 0.80명으로 전년 0.75명보다 반등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일본의 2025년 합계출산율은 1.14명으로 한국보다 높지만 일본 역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높은 결혼·출산 의향이 실제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기까지 경제적·사회적 장벽이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결혼과 출산을 위해 필요한 조건을 묻자 양국 청년 모두 경제적 안정을 중요하게 꼽았다.
‘결혼을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 양국 모두 ‘본인·배우자의 고용과 수입 안정’을 가장 많이 꼽았다. 한국은 51.8%, 일본은 41.1%였다.
안심하고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조건에서도 ‘경제적 부담 완화’가 양국 모두 1순위였다. 한국은 56.0%, 일본은 46.7%였다.
특히 주거 문제에서는 한국 청년의 부담이 두드러졌다. 앞선 세부 조사에서 결혼을 원하는 한국 미혼자들은 ‘주택비 경감 등 결혼 후 주택 확보’를 결혼을 위한 주요 조건으로 꼽은 비율이 58.6%에 달했다. 일본은 9.0%에 그쳤다.
한국 미혼자들은 이어 ‘본인 또는 상대의 안정적 고용·수입’(57.0%), ‘출산·육아하기 좋은 환경’(36.7%) 등을 꼽았다.
일본 미혼자들은 ‘본인 또는 상대의 안정적 고용·수입’(59.6%)에 이어 ‘이성과의 만남의 장 설정 등 결혼 지원’(44.9%), ‘법적인 혼인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 선택 보장’(33.7%), ‘결혼 후에도 자신의 취미·오락을 즐길 수 있는 시간 확보’(30.3%) 순으로 응답했다.
이와 관련 ‘한·일 청년 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한 미야모토 다로 주오대 법학부 교수는 “한국은 사회보장제도의 역사가 짧아 고령화 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경쟁이 지나친 측면이 있다면, 일본은 젊은이들이 경쟁을 피하고 오래된 사회 안전망에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양국 청년들의 결혼·출산 인식을 비교한 한국과 일본 경제계는 공동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대한상의는 이날 ‘한일 저출산 대응 교류위원회’ 1차 회의를 열고 저출산·인구감소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민간 협력 채널을 공식 출범시켰다.
교류위원회는 지난해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정부가 지방 활성화, 저출산·고령화 등 공통 사회문제를 함께 다루기 시작하면서 민간 차원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경제계의 인식에 따라 구성됐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 측 위원장인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일본 측 위원장인 고바야시 켄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양국 교류위원과 경제계·정부·지역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최태원 회장은 “인구 변화는 먼 미래의 예측이 아니라 이미 기업과 경제를 강하게 제약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이어 “앞으로 10년 동안 노동시장에 들어올 사람들은 이미 모두 태어났지만, 그들이 만들어낼 가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한국과 일본이 구축한 경제공동체에서 청년들이 양국을 오가며 일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줄어드는 노동력을 어떻게 보완하고 청년 한 명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진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과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저출생·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양상과 속도는 차이가 있다”며 “양국의 정책 대응과 성과 등을 비교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인구 집중이 지나치면 출산 본능보다 생존 본능이 강해진다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의 공통적인 사실”이라며 “한·일 협력을 통해 한국 청년들이 일본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면 경쟁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교류위원회는 앞으로 한·일 공동연구와 조사를 진행하고 매년 한 차례 양국을 오가며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