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은 베트남에 한국산 석유제품이 대거 공급되며 양국 간 에너지 협력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일시적인 제품 수출 확대를 넘어 자원개발과 석유 비축, 원전까지 양국 에너지 협력을 한 단계 격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2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국경제학회(KEA), 베트남사회과학원(VASS), 고려대 글로벌에너지기술정책전문가과정(KU-GETPPP)이 공동 개최한 한·베 전략공동포럼에서 강성진 한국경제학회장은 “한국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고 베트남이 노동력과 생산을 담당하는 수직적 분업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양국이 공동연구와 실증, 생산과 세계시장 진출을 함께 추진하는 수평적 협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날 포럼선 수평적 협력의 방안 중 하나로 ‘에너지 협력’이 주로 거론됐다. 이번 중동전쟁으로 석유제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났던 베트남에 석유제품을 공급해준 주체가 바로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이터통신은 베트남의 원유 조달이 차질을 빚자 3~4월 정제유 수입을 크게 확대했고, 특히 한국산 구매가 급증해 한국이 싱가포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주요 공급국이 됐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서 발제자로 나선 김형건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대(對) 베트남 석유제품 수출액은 지난 2년간 약 36% 감소했지만 올해 들어 60% 상승했다”라며 “이번 석유제품 수출 증가는 베트남이 어려울 때 한국이 도와준 사례다. 이를 기반으로 양국의 에너지 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중동전쟁으로 각 국이 석유수급이 꼬이면서, 지난 4월 미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주요국이 한국정부에 휘발유 등유 등 석유제품 제한을 자제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 관련기사, 2026년 4월 22일자 A10면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정부는 베트남과의 신뢰자본을 쌓기 위해 베트남에 대한 석유제품 수출제한을 엄격히 하지 않고 오히려 풀어줬다. 이에 김 교수는 한국석유공사가 베트남 해상 15-1광구를 개발해 장기간 원유를 확보한 경험을 확대해 앞으로 한국의 베트남 광구개발을 늘리고, 한국이 축적한 석유 비축·스와프 운영 경험과 해외 공동비축망을 베트남과 연결해 양국의 에너지 협력을 증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주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베트남이 최근 첫번째 원전사업인 닌투언1 원전건설을 러시아 국영 원자력기업 로사톰과 체결한 것에 주목했다. 닌투언1 원전은 2031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베트남은 제2원전 건설사업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지난 4월 한·베 정상회담에서도 닌투언2 원전 협력이 논의된 만큼, 한국도 베트남 원전 건설에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고 교수는 “한국이 UAE 원전 수출 경험에 정책금융·보험과 국제 파트너십을 결합해 K-원전을 베트남에 수출할 수 있다”라며 “베트남도 러시아 일변도의 원전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어서 서로 윈윈이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주요당국자도 이날 포럼서 한국과의 에너지 협력 증진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따 민 뚜언(Tạ Minh Tuấn) 베트남사회과학원(VASS) 부원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서 “베트남은 현재 8%대 고성장을 계속 이루고 있는 나라”라며 “앞으로 양국 간 에너지 협력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VASS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국책 사회과학 연구기관으로, 한국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며 정부 정책 수립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책전략위원회 산하 정책전략연구원(IPSS)의 당 티 투 호아이(Dang Thi Thu Hoai) 산업·지역경제부장은 한·베 우선 협력 분야로 청정에너지, 기술이전, 수소·에너지저장, 반도체·디지털 기술, 탄소시장, 녹색금융, 인적자원 양성, 연구·혁신 등을 꼽았다.
포럼 1세션에서는 한국과 베트남 전문가들이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당 티 투 호아이(Dang Thi Thu Hoai) 베트남 정책전략연구원 산업·지역경제부장이 베트남의 성장전략과 정책방향을 제시한 데 이어 팜 남 훙(Pham Nam Hung) 베트남 농업환경부 관계자가 탄소시장 제도를 설명했다. 한국 측에서는 김경남 고려대 교수가 탄소중립 정책, 김형건 강원대 교수가 중동발 오일쇼크와 한·베 에너지안보 협력, 원두환 부산대 교수가 전력시장 개혁 방안을 각각 발표했다.
2세션에서는 기술이전과 녹색투자 등 보다 구체적인 협력방안이 논의됐다. 응우옌 레 뚜언(Nguyen Le Tuan) TECOTEC그룹 부교수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수자원 관리와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발표했고, 고주영 한국외대 교수는 한·베 원전협력, 설윤 경북대 교수는 지속가능한 상수도 운영과 물관리 방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