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전수조사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이 가라앉지 않자 정부가 상속 농지나 관행적으로 빌려 경작한 임대차 농지 등은 농지법 위반 처분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농지 조사 후속 조치와 제도 개혁 방향’을 발표했다. 투기 대상 농지에 대한 혼선이 계속되면서 농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처분 대상이 되는 투기를 세 가지 유형으로 명확히 했다. 투기가 아닌 상속 농지, 고령농 등 관행적 임대차 농지, 영농 곤란 농지가 대상이다.

투기가 아닌 땅은 농지은행 위탁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조사 결과를 근거로 농지를 처분하거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하는 특별조치법을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2~3여 년의 특례기간 동안에 서면 임대차 계약만 체결하면 적법 임대차로 인정하겠다는 것인데 ‘임대차 범위’를 넓히며 ‘농심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매 등으로 농지 지분을 사거나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영농계획서를 제출하거나 농지를 취득하고도 농사를 짓지 않고 무단 방치·임대하는 경우를 투기 목적으로 분류해 처분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또 농업법인을 만들어 농지를 취득하고도 농사를 짓지 않고 농지를 쪼개 팔거나 임대해 부동산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투기에 해당된다.

농가의 관행적 농지법 위반 등을 양성화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기간도 마련된다. 이 기간에 서면 계약을 맺으면 현행 농지법에 맞는지 따지지 않고 계약기간 동안 적법 임대차로 인정된다.

다른 법령상 요건을 충족하고 사전에 전용 허가 등을 신청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던 시설은 사후 허가 신청이 가능해진다. 장기간 임야화된 농지, 농지로 장기간 이용돼 온 임야 등 지목과 실제 상태가 다른 경우도 신청 시 지목 변경이 가능하다.

농지은행에 농지를 팔거나 위탁하고 싶어도 수요 급증으로 지체됐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지은행 역할이 강화된다.

정부는 내년 예산 증액을 국회와 협의해 매입 대기 물량을 줄이고, 현재 진흥지역 농지 중심은 농지은행의 매입 대상을 농업 활용이 가능한 비진흥지역 농지까지 넓히기로 했다. 청년농과 전업농 등 지역별 농지 수요를 고려해 필요한 농지를 우선 매입·공급하고 농지은행만 방문하면 관련 기관 업무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절차도 개선한다.

정부·여당은 이달 중 이 같은 내용의 특별조치법을 발의하고 오는 12월까지 국회 절차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특례기간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결정된다.

정부가 이번 특조법 제정 방침을 밝힌 배경에는 최근 농지 전수조사로 인한 농심 반발이 있다. 농지법 위반 농지는 처분 의무기간 1년, 처분 명령기간 6개월을 거쳐 처분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감정평가액과 개별공시지가 중 높은 금액의 25%가 매년 이행강제금으로 부과되기 때문이다.

최근 농지 전수조사 기본조사 결과 27%가량의 농지가 불법 임대차 의심으로 분류됐다. 관행적 임대차가 성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지 전수조사로 농가에서는 강제금이 부과되거나 농지 가격이 폭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 같은 우려에 당정은 지난달 21일 특조법 제정을 예고했다.

농촌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농지 가격은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전국 농지의 1㎡당 평균 거래 가격은 2023년 6만1612원이었는데 올해 1~7월 기준 5만85원으로 3년 만에 1만원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협은행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월평균 신규 농지담보대출 금액은 82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49억원)보다 26% 줄었다.

경기도 파주에서 농지를 중개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1년 반 동안 농지 거래가 없었다”며 “농지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농지 전수조사로 더욱 수요가 낮아졌다. 매물은 늘고 있지만 농지 가격을 아무리 낮춰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거래가 어렵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이처럼 퇴로를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당에서는 농지은행 외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출자 혹은 출연한 비영리법인과 생활협동조합이 재임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매입 주체를 확대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경자유전’의 원칙은 그대로 두되 현실에 맞게 농지법의 이용 틀을 바꿔 농지 임대차를 제도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